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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자냥 Jan 28. 2021

차별과 혐오의 시대, 마음의 백신


지난해 이맘때만 하더라도 가을쯤이면 코로나에서 벗어나 극장도, 여행도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꿈이었다. 코로나는 갈수록 기승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백신이 나왔고, 여러 나라에서 접종하고 있다.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앗아간 이 끔찍한 바이러스도 서서히 사라지겠지. 그러나 바이러스가 남긴 상처를 지우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완전한 치유가  어려울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바이러스가 남긴 가장 큰 상처는 차별과 혐오가 아닐까. 맨 처음 이 바이러스는 인종차별을 불러왔다. 중국에서 시작했기에, 동양인들이 차별과 혐오, 폭력에 시달렸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 땅에서는 이 바이러스가 처음 폭발적으로 터진 곳이 종교집단이었고, 두 번째로는 성소수자들이 자주 가는 클럽에서 대규모로 유행했기에 특정  종교인과 성소수자들이 혐오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뿐인가. 아무리 조심해도 ‘확진자’가 되는 순간 주위의 비난과 냉대, 혐오의 시선은 피할 길이 없는 것 같다. 백신을 개발했듯 이 깊은 상처를 낫게 하는 치유제도 인간은 지혜롭게 찾아낼 수 있을까?

사람들은 종종 책의 힘, 문학의 힘을 간과한다. 문학은 이 현실에서 쓸모없는, 어쩌면 몽상가들을 위한 지적 놀이 또는 허영으로까지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세상에서도 한 권의 책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위안과 위로, 지혜를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차별과 혐오가 첨예해진 지금, 사람 사이의 연대를 강조하는 문학 작품이야말로 가장 좋은 마음의 백신은 아닐까.  <지복의 성자>와 <레닌의 키스>에는 고달픈 현실에 지친 이들이라면 누구나 꿈꿀 만한 이상 세계가 등장한다. 남성과 여성의 성(性)을 동시에 갖고 태어난 히즈라 ‘안줌’이 이곳저곳 떠돌다 무덤가 사이에 만든 ‘잔나트 게스트하우스’와 지혜로운 ‘마오즈 할머니’가 이끌어가는 ‘서우훠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이 두 공동체에는 차별도, 혐오도 존재하지 않는다. 파라다이스라는 의미의 ‘잔나트’와 ‘수활(受活)’, 즉 ‘고통 속의 즐거움’이라는 뜻을 지닌 ‘서우훠’ 마을은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그곳에는 저마다 세상에서 배척당한 이들이 모여 산다. 잔나트 게스트하우스를 만든 안줌 자신이 앞서 말했듯 제3의 성 ‘히즈라’이며, 잔나트에는 그녀처럼 소외되고 버림받은 존재들이 그들만의 보금자리를 만든다. 매춘부라는 이유로 장례식장에서조차 거부당한 여자의 시신을 씻기고 장례를 치러주면서 이곳은 장례식장도 겸하게 된다. 죽은 이들까지 품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진정한 파라다이스이다.

서우훠 마을은 애초부터 장애를 지닌 사람들만 모여 살고 있다. 중국의 세 현이 교차하는 바러우산맥에 자리해, 가장 가까운 마을과도 최소 십 여리가 떨어진 이 마을은 명나라 때 조성되어, 맹인과 절름발이, 귀머거리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장애인이 아닌 장성한 사람들은 짝을 찾아 외지로  떠났다. 그러다 보니 바깥세상의 장애인들은 마을로 들어오고 마을의 ‘온전한 사람들’은 모조리 밖으로 나가, 현재는 장애인들만이  모여 사는 마을이 되었다. 이런 사정이라 어느 군, 어느 현에서도 이 마을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서우훠는 세상에서 잊힌, 세상 밖 마을이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폭압적인 사회주의 체제에 속하지 않는 행운을 누리게 되고, 그런 곳에서 사람들은 몸이 불편해도 서로 돕고 보듬어주면서 다른 마을 사람들이 대기근에 시달릴 때도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지복의  성자>의 인도, <레닌의 키스>의 중국. 서로 멀리 떨어졌고 체제도, 정치 상황도 다르지만 소외된 이들이 서로 기대고 보듬어주면서 그들만의 천국을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은 꽤 닮았다. 그런 공간이 가능하도록 애써온 존재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른바 ‘정상’을 벗어난 이들을 산 자, 죽은 자 가리지 않고 온 마음으로 껴안은 안줌과 서우훠의 마오즈 할머니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그처럼 성자와 같았느냐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그들도 젊은 시절에는 자기만을  위해 살았다. 그토록 바라던 여성으로 다시 태어난 안줌은 화려하게 꾸미고 여왕으로 군림하며 자기만을 위한 인생을 살아갔다.  마오즈도 한때는 혁명을 통해 현장이나 여주석 등 높은 인물이 되리라는 야망을 품었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를 상처 주게 되었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갉아먹었다. 그것을 깨달은 두 사람은 다른 누군가를 보듬고 이끌어가는, 공동체를 생각하는 존재가 된다. 이 두 ‘할머니’들의 품에서 소외된 이들은 평화와 안식을 얻는다.


<지복의  성자>와 <레닌의 키스>를 읽다 보면 인간은 서로 가장 상처 주는 존재이지만 결국 사람에게는 사람만이 답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 사람으로 인해 구원받고 삶을 변화시키는 이야기는 <컬러 퍼플>에서도 엿볼 수 있다. 상처 받은 영혼 ‘셀리’에게 ‘슈그’가 그런 존재이다. 흑인으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일찍부터 성폭행당하고, 팔려가다시피 결혼해 가부장 남편에게 순종하며 살아가느라 삶이 고통 그 자체였던 ‘셀리’는 남편이 사랑하는 여자 ‘슈그’가 병들어 자신의 집에 오는 바람에  함께 살게 된다. 이 기묘한 상황 자체도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데, 놀랍게도 셀리는 슈그에게 마음을 열면서 그녀로부터 위로받고  마침내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운다. 두 여자가 서로 의지하고 기대면서 그들의 삶이 아름다운  보랏빛으로 물드는 순간을 지켜보는 일은 무척 감동적이다. 백인 남성의 모습을 한 신(神). 신은 셀리가 아무리 간절히 편지를 써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슈그를 만나기 이전 셀리는 끔찍한 삶을 저주하면서 신을 모독했다. 그러나 이제 슈그가 다정히 속삭인다. 신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그것’ 일뿐이라고 이 세상 모든 만물이라고. ‘좋은 걸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고(<컬러 퍼플>, 260쪽). 누군가와 마음으로 소통하고 연대하는 인간은 상처도 씻을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 기어이 살아남는다. 삶을 바꿀 수 있음을 셀리가 증명한다. 셀리는 슈그로부터 받은 사랑과 환대를 다른 이들에게 나눠줄 것이다. 누군가를 마음으로 환대하고 사랑하면 그것은 다시 고리가 되어 다른 이에게 이어진다.

안줌과 마오즈, 셀리와 슈그, 네 여성은 저마다 인도, 중국, 아프리카 등 편안하게 자기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곳에서 폭력적인 시절을 거쳐 왔다. 자기 온몸으로 차별과 혐오를 겪었으며, 때로 억압의 대상이도 했다. <지복의 성자>에는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카스트제도, 빈부격차 등등 인도의 복잡한 현실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남성의 몸 안에 갇힌 여성 안줌의 처지는 어떻게  보면 그 몸 자체로 인도의 복잡한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다. 힌두교 안의 이슬람, 인도 안의 이슬람교도, 또는  카슈미르인. 그 모든 것들이 그 한 몸에서 날마다 전쟁을 벌인다. 마오즈 할머니는 중국의 수많은 혁명의 역사를 제 몸으로 겪었으며  <컬러 퍼플>의 셀리는 가부장의 폭력과 인종차별을 온몸으로 겪었다. 그리고 그 고통스러운 상처에 쓰러져 도저히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들이 기어이 그 삶에 꺾이지 않은 것은 그 곁에 결국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줌의 잔나트 게스트하우스를 지켜보노라면 과연 정말로 그곳이 무덤인지, 폭력이 난무하고 계급과 성, 인종, 종교,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이 보통의 세상이 무덤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그런 세상에 비하면 차별과 혐오가 사라진 공간인 잔나트와  서우훠마을이 사람들이 나아갈 가장 이상적인 세계는 아닐까. <지복의 성자>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른다.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서로를 배신하고 죽인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한다.”(258쪽)고.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마음, 공감하고 연민하는 마음에서 변화는 일어난다. “나아지고 싶다면 우리 모두 어디선가부터 시작을  해야 하고, 우리가 고쳐나가야 할 건 결국 우리 자신이에요.”(<컬러 퍼플>, 349쪽)라는 말은 그래서 더 의미 깊게  다가온다. 차별과 혐오가 그 어느 때보다 깊어진 코로나 시대에 이 책들은 분명 마음의 백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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