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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자냥 Feb 09. 2021

절대 뽑히지 않기를, 절대 상처 입지 않기를

오에 겐자부로,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몇 해 전부터 ‘문지 스펙트럼’이 새 옷을 입고 다시 선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 시리즈를 무척 좋아했다. 작고 가벼운 판형에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 그러면서도 목록을 보면 읽을 만한 작품이 무척  많은, 알찬 시리즈라고나 할까. 작품 목록이 문학에만 한정되었던 것도 아니어서 더 좋았다. 예를 들면 <록 음악의 아홉 가지 갈래들> 또는 <재즈를 찾아서> 같은 책들이 있던 이 시리즈.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오면서, 그중 단연코 눈에 띈 책은 오에 겐자부로의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이다. 이 작품은 원래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에 속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이렇게 이 시리즈로, 예쁘게 옷을 갈아입고 나왔으니 어찌 궁금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오에 겐자부로인데  말이다.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라는 제목만 봤을 때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처음에 나는 제목만 보고는 오에의 ‘기묘한 아르바이트’라는 단편을 떠올렸다. 이 작품은 개를 도살하는 아르바이트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도 뭐랄까 싹을 뽑거나 짐승을 쏘아 죽이는 아르바이트에 관한 내용인가?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어쨌든 이 제목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꽤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책을 받아 들고 몇 장 넘기니, 예상과는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이들이 나온다. 이제 막 10대에 접어들었거나 한참 눈부시게 그 시절을 누릴 열여섯, 열일곱 즈음의 소년들. 그런데 이 아이들은 그 아름다운 청춘을 박탈당한 것 같다. 소년들의 인솔자도, 아이들이 인솔자에 이끌려 도착한 어느 마을에서도 그들을 바라보는 눈길이 곱지 않다. 경멸과 조롱, 혐오 가득한 눈길이랄까. 알고 보니 이 아이들은 모두 감화원 출신이다.

가족에게까지 버림받다시피 한 그들은 산골 외진 마을에 떠맡겨진다. 이곳에서 보호감찰을 받으며 ‘노동’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형편없는 음식과 잠자리, 마을 사람들의 냉대 속에 그들에게 첫 번째 일이 주어진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일하러 가는 길에 죽은 고양이나 개와 같은 동물 사체가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별일 아니겠거니 생각하며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 앞에서  당혹해한다. 그곳에는 개와 고양이는 물론 토끼, 소, 돼지 등 죽은 동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이 마을 대장장이는 아이들에게 그걸 몽땅 파묻으라고 한다. 절대 손으로 만지지 말라는 말과 함께. 아이들은 영리했다. 곧 사태를 파악한다. 전염병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염병으로 사람까지 죽어나가기 시작하자 마을 사람들은 소년들에게 어떤 정보도 주지 않은 채, 전염병을 피해 마을을 봉쇄한 채, 그들끼리만 야반도주한다.

그들을 늘 감시하고, 윽박지르고, 폭력을 쓰던 어른들이 사라졌다! 마을은 이제  아이들만의 세상이다. 해방감을 느낄 만도 한데, 소년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왜 아니겠는가. 전염병이 도는 마을에 그들만 남겨진,  아니 버려졌는데 말이다. 마을을 벗어나 달아날 궁리도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이 아이들을 도망치지 못하게 저 멀리에 총을 든 감시자를 남겨둔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천덕꾸러기였기 때문에 생명력도 강한 소년들은 이내 절망이나 당혹감에서 벗어나 자기들만의 삶의 터전을 꾸린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어른들이 사라진 마을은 오히려 평화롭다. 폭력이 사라지고, 돌봄과 배려, 믿음을 바탕으로 우정과 애정이 자연스럽게 소년들 사이에서 싹튼다. 아이들은 채소죽을 만들어 나눠먹고, 새 사냥에 나서기도 하며, 포획한 새들을 함께 구워 먹으면서 축제를 벌이기도 한다. 눈이 내리는 날에는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그들만의 왕국에서 아이들답게 즐거이 놀 줄도 안다. 그리고 이곳에서 생애 첫사랑을 만나기도 한다. 이런 장면들을 읽다 보면 이 아이들이  어른들이 떠난 이 마을에서 자기들만의 순수한 왕국을 만들고, 누구 하나 전염병에 걸리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기를 나도 모르게  바라게 된다. 그 바람은 과연 이루어질까.

작품을 읽어나가다 보면 소년들 가운데 감화원에 갈 정도로 죄질이 나쁜  아이는 없음을 알게 된다.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를 비롯해 그의 동생은 말할 것도 없고, ‘미나미’ 또한 그렇다. 그들 대부분은 ‘대수롭잖은 악행을 저지’르거나 ‘그중에 비행소년이 될 경향을 지녔다고 판정되었을 뿐’이다. 전쟁 뒤 ‘거리에서 미치광이 어른들이 광분하고 있던 그 시대’에, ‘온몸의 피부가 매끌매끌하고 밤색으로 빛나는 솜털밖에 없는’ 이들은 오히려 때 묻지 않은 순수함마저 느껴진다. 아무리 감화원 출신 아이들이라고는 하지만 전염병이 돈다는 사실조차 감춘 채 자신들만의 안위를 생각하면서  야반도주해버린 어른들이 더 끔찍하고 ‘감화’해야 할 대상은 아닐까? 어른들의 비열함과 만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을 이들을 위해 그 내용을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그들의 온갖 만행을 지켜보노라면 분노에 치를 떨게 되고 이 소년들이, ‘나’가  끝까지 그들에게 지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라게 된다. ‘새싹’이 절대 뽑히지 않기를, 어른들이 쏘는 무자비한 화살에 이 ‘어린  짐승’들이 부디 한 사람도 상처입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외딴 마을에 아이들만 남겨졌다는 점에서 얼핏 이 작품은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파리대왕>이 그랬듯이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또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어른과 아이의 대립만이 아니라 안과 밖, 약자와 강자, 갇힌 자와 감시하는 자, 순수와 기만, 부당한 권력에 대한 비판과 저항 등 읽는 내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흥미진진하다. 소년들이 어디론가 떠나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마을의 비밀이 벗겨지는 장면까지는 미스터리를 읽는 듯하다가, 소년들만 남겨진 뒤에 그려지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한 편의 성장 소설과도 같다. 그리고 그 뒤에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오에 겐자부로 특유의 사회비판 소설을  읽는 것 같아, 완벽한 독서의 즐거움을 전한다. 오에 겐자부로가 스물세 살에 발표한 첫 장편이자, 그 자신이 가장 ‘행복한  작품’이었다고 밝히는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나 또한 그의 작품 중, 이 책을 가장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옛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와 새롭게 옷을 갈아입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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