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싯 몸, <인생의 베일>
며칠 동안 이 책으로 인해 무척 즐거웠다. 고전이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가 싶은 그런 책이다. 서머싯 몸, 정말 얄밉게도 글 잘 쓴다. 모두 80장인 이 작품은 각 장이 단 몇 페이지로 이루어져 짧게 끝난다. 20분짜리 일일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다음 편이 너무 궁금해서 아, 한 회만 더, 한 회만 더 이렇게 계속 보게 되는 드라마 같다.
시작부터 상당하다. 여자와 남자가 밀회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누군가가 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오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그들이 부부이고, 자신들의 집에 있는 거라면 이렇게 놀랄 일이 없다. 하녀나 하인 중 한 사람이겠지, 남자가 다독이자 여자가 말한다. 이 시간에 그들은 여기엔 얼씬도 하지 않는다고. ‘월터’일지도 모른다면서 공포에 질린다. 남자의 신발을 가리키고, 모자는 대체 어디에 뒀냐고 묻고, 남자는 불안한 마음으로 숨을 곳을 찾고……. 딱 봐도 불륜이다. 그런데 남편인 월터가 한낮에 갑자기 집에 온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이 시작 부분 단 몇 쪽에서 펼쳐진다.
여자의 이름은 키티, 남자는 찰스. 여자는 유부녀여도, 남자는 총각인가 싶은데, 그것도 아니다. 그 또한 아내가 있다. 전형적인 잘생기고 능글능글한, 자아도취적인 바람둥이 유형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이런 남자, 뭐가 좋아서 반했을까 싶을 정도로 혐오스러운 유형이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그렇다고 ‘키티’ 이 여자가 호감 가는 인물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신분 상승 욕구와 허영 많은 엄마 때문에 그렇게 길들여져서 남자들 눈길을 즐기고, 돈 많고 잘생기고 집안 좋고 지위도 좋은 그런 남자와 결혼하는 게 유일한 삶의 목표인, 자기의 엄마와 거의 다를 바 없는 그런 여자로 자랐다.
그런데 문제는 온갖 남자들의 구애를 즐기면서 아무나 상대할 수 없다고 뿌리치면서 도도하게 세월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결혼할 나이가 꽉 차서, 아니 그마저도 자칫 지나가 버릴 거 같다. 이제는 구혼자들도 늙은 남자뿐이고 그마저도 드물다. 그런 중에 자기보다 못나고, 그래서 엄마에게 구박만 받아 온 동생이 먼저 결혼하게 될 것 같다. 오, 이걸 어쩌지! 초초하다. 엄마도 이제는 큰딸 키티를 냉대한다. 한심하게 생각한다. 그러던 중 알게 된 ‘월터’- 이 남자는 키티에게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한다. 얼마나 희미했는지 몇 번이나 춤을 춘 사이이지만 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관심 있는 것 같지만, 지루하고 따분하고 음울하다. 그런데 어느 날 월터가 그녀에게 청혼한다. 키티는 엄마의 냉대도, 구혼자 없이 나이 들어가는 처량한 처지도, 동생이 먼저 결혼하는 것도 견딜 수가 없던 차에, 월터의 청혼을 허락하고 만다. 그를 눈곱만치도 사랑하지 않으면서.
비극은 여기서 시작한다. 세균학자인 월터는 예의도 바르고, 생긴 것도 딱히 크게 문제 삼을 것 없고, 남들 평판도 그만하면 괜찮다. 게다가 키티를 거의 숭배하듯이 사랑한다. 그런데, 키티는 그에게 전혀 애정을 느낄 수가 없다. 관심사도 서로 너무나 다르고, 이야기를 나눠도 도무지 즐겁지 않다. 세균학자인 월터를 따라 결혼 후 홍콩으로 오게 된 키티는 그곳에서 찰스를 만나고, 이 능글맞은 바람둥이와 사랑에 빠진다. 아니, 키티에게는 사랑이었을지 모르지만 찰스에게는 그저 욕정 풀이 대상이었을 뿐인 그런 관계.
그런데, 키티와 찰스가 밀회를 즐긴 그 오후에 집안에서 문을 돌리던 소리의 주인은 하인이나 하녀가 아닌, 월터가 맞을까? 벌써 들킬 리가 있겠어? 이런 생각을 하던 나에게 서머싯 몸은 여지없이 찬물을 끼얹는다. 그 생각을 깨뜨려버린다. 그렇다. 그날 문을 열려다가 그냥 돌아간 사람, 한낮에 집에 돌아왔다가 아내의 불륜 현장을 알게 된 사람은 월터였다. 아내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 배신에 크게 고통받은 월터는 아내에게 조건을 제시한다. 찰스가 이혼하고 그녀와 결혼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자신과 함께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 오지로 떠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키티는 자신만만하다. 찰스는 나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그의 아내와 당장 이혼할 것이고 자신과 곧 결혼할 것이라고.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찰스가 결코 그럴만한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얼마나 잘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능글맞고, 호색한에, 키티가 아니더라도 다른 그 어떤 여자와도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될 남자라는 걸 뻔히 안다.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은 오직 이 세상에 키티뿐이다. 월터마저도 찰스가 그런 싸구려 인간임을 알기에 그런 제안을 쉽사리 한 것이다. 복수심에 가득 차서 냉소 가득한 얼굴로. 실제로 키티가 모든 상황을 찰스에게 털어놓자, 이 능글남은 자신은 절대 이혼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게 아니라며, 키티를 설득한다.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으로 가라고……. 그렇다. 자기만 살자는 거다.
찰스의 배신과 월터의 증오, 콜레라가 창궐하는 지역으로 끌고 가 자신을 죽이고야 말겠다는 그 무시무시한 미움과 증오에 부르르 떨던 키티는 결국 월터를 따라서 중국 오지로 떠난다. 그곳에는 오직 죽음만이 있다. 사랑이나 욕망, 배신, 질투 이런 인간의 감정들이 사치에 가까워 보인다. 월터와 키티는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면서도, 아니 월터는 그런 중에도 여전히 키티를 사랑하는 자신을 경멸하면서도 이 죽음의 마을에서 형식적인 부부로 함께 지낸다. 그 사이 키티는 수녀원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봉사를 시작하고, 또 ‘워딩턴’ 같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이를 만나면서 서서히 변화한다. 허영기 많던 그 철없는 여인에서 조금씩 변모한다. 오직 죽음만이 넘치는 이 공간에서 인간의 세속적 욕망들은 그저 덧없어 보인다.
자, 그러면 독자는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아, 이렇게 변한 키티가 월터의 참된 면모, 그러니까 ‘이타성과 신의, 지성과 감성 등 위대한 품성’을 갖춘 그의 진면목을 깨달아서 두 사람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결말로 가는구나!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서머싯 몸은 얼마나 잔인한지, 아니 얼마나 인간을 잘 아는지, 그게 그리 쉽지 않다는 걸 꿰뚫어 본다. 마치 월터가 키티의 그 경박한 속성을 다 알고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었듯이, 서머싯 몸 또한 인간은 그렇게 위대한 존재가 아니라고, 얼마나 얕고 천박하며 이기적이며, 또 비속한 존재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사랑의 속성도.
나는 당신에 대해 환상이 없어. 나는 당신이 어리석고 경박한 데다 머리가 텅 비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의 목적과 이상이 쓸데없고 진부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이류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기뻐하지 않는 것에 나도 기뻐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내가 무지하지 않다는 걸, 천박하지 않다는 걸, 남의 험담을 일삼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멍청하지 않다는 걸 당신에게 숨기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생각하면 한 편의 코미디야. 당신이 지성에 얼마나 겁을 먹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당신이 아는 다른 남자들처럼 당신에게 바보처럼 보이려고 별 짓을 다했어. 당신이 나와 결혼한 건 편해지기 위해서라는 걸 아니까. 그래도 나는 당신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어.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랑에 보답받지 못하면 불만을 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어.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길 기대하지도 않았고 당신이 그래야 할 어떤 이유도 찾지 않았어. 내 자신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으니까.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때때로 당신이 나로 인해 행복하거나 당신에게서 유쾌한 애정의 눈빛을 느꼈을 때 황홀했어. 나는 내 사랑으로 당신을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어. 나는 그걸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신이 내 애정에 참을성을 잃기 시작하는 징조가 보이는지 언제나 조심했어. 대부분의 남편들이 권리로 여기는 걸 나는 호의로 받아들였어. (<인생의 베일> 96~97쪽)
월터의 키티를 향한 이 호소는 너무나도 안타깝고 절절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키티의 가슴에 사랑의 불을 지필 수 없으리라는 걸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다. 사랑을 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사랑은 동정이나 연민아 아니니까. 그가 아무리 세균학자로, 의사로 능력이 뛰어나고,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더 생각하는 이타성 넘치는 인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참으로 훌륭하다는 칭송을 받고, 고결한 취미에, 똑똑한 지능을 갖추었더라도, 키티에게는 사랑을, 욕망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오히려 월터가 키티의 경박함과 매력적이지 않은 속성들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듯 키티 또한 잘생겼지만 그것 빼곤 딱히 볼 게 없는 찰스를 욕망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게다가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는 고마움조차 모를 수도 있어요. 상대방은 나를 사랑하는데 나는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지루함만 느낄 테니까요.”라고 말했듯이 키티는 월터가 자신을 사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함부로 대한다. 오, 인간이란!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베일>은 ‘사랑’은 있으나 진짜 ‘사랑’이라고 이를 만한 것은 없는 기묘한 소설이다. 월터는 죽어가는 순간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듣기는 하지만 나도 알고, 이 책을 읽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 ‘사랑’이라는 말이 한 인간, 그러니까 친구가 죽어갈 때 느낄 법한 연민이나 슬픔,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마음이지 설레고 들뜨고, 안고 싶고, 같이 있고 싶고, 그를 생각하면 한없이 행복해지는 그런 사랑이 결코 아님을. 월터 그 자신 또한 알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죽은 것은 개에 물린 사람이 아니고 개였다’고. 쓸쓸히 말한 것이리라.
키티는 영국을 떠나 홍콩에서 지낸 후, 다시 홍콩을 떠나 중국 오지로 가면서 서서히 변화했다. 그 사이 사랑도, 이별도, 죽음도 경험한다. 스스로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지! 서머싯 몸은 그런 인간의 얄팍한 속성을 또 얼마나 잘 아는지! 키티는 찰스와 재회하고 그토록 혐오스럽다던 그 인간과 또다시 놀아나고 만다. 이 장면에서 나는 이 한심한 여자야, 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키티가 정말 구제불능이라고 느꼈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혐오는 나만 느끼는 건 아니었나 보다. 키티 그녀도 찰스와 다시 육체관계를 맺고는 자기 자신을 혐오한다. 그래, 그래야 마땅하다. 그건 사랑이 아니다. 그저 욕정일 뿐. 그래, 콜레라가 창궐하는 오지에서, 서로 싸늘한 월터와 육체관계를 맺었을 리는 없고 그랬다면 그처럼 오래 참았으니 욕정에 들끓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이해하자……. 그래도 아이고 이 여자야 싶어 진다. 못마땅하다. 그럼에도 서머싯 몸이 인간을 얼마나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잘 파악하고 있었는지, 얼마나 미성숙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는 점에는 감탄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마지막에 키티가 아버지와 함께 또 다른 나라로 떠나는 선택을 하기보다는 진실로 홀로서기를 했다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도 남는다. 부모, 특히 엄마로 인해 허영심 많은 여자, 그저 ‘사랑한답시고 결국 어떤 남자와 잠자리를 갖기 위한 여자’로 키워진 키티. 그녀가 자기 딸만큼은 ‘자유롭고 자기 발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키울’ 거라는 결심을 할 정도로 성장했는데, 그 성장을 바탕으로 앞으로 살아갈 인생도 오롯이 ‘혼자’ 해쳐나가는 결말이었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뭐, 서머싯 몸도 불완전한 인간이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