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ben ch
사람들이 화를 내고 있어요.
그리고 이 길 위에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죠.
화면을 끊임없이 들여다본다.
지루하고 길고 무료한 시간들이 이어졌다.
어디까지 왔을까.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처음 보는 언어들이 시야를 두드린다.
시각을 자극하는 언어의 향연은 착시가 아니라고 했다. 정처 없이 휘몰아친다.
문이 열린다. 또 문이 닫힌다.
한 개의 문이 열리면, 곧이어 또 다른 문이 열렸다.
어기어차 – 어기어차 –
사람들은 기이할 정도로 능숙하게 행동했다. 행렬을 이어가는 이들은 답을 주지 않는다.
질문들은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고, 질문 뒤에는 답이 주어지지 않는 긴 시간들이 이어졌다.
낯설고 엉뚱한 질문들의 연이은 행렬 속에서 골몰한 이는 나 외엔 찾아볼 수 없었다.
알리스,
이쪽으로 한 번 와볼래?
언어는 금세 해일을 이뤘다. 자신만의 색을 뽐내며 영롱하게 빛났다. 때로는 답이라도 있는 양 현인이 되어 길을 안내하였다. 다르게 쓰여지는 이야기들에 대해 알아보지 못하는 이는 나 하나뿐이었다. 나는 길고 지루한 알고리즘들 속에서 가장 엉뚱하고, 처음 보는 것들로 채워진 길을 택했다. 어쩐지 이러한 속성은 영 변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 복잡하고 긴 연결고리를 따라 기어코 뛰어들 자신이 있는 거야?
그렇지만 이미 들어서 버렸는 걸. 멈추어 있고 싶지 않아.
어릴 적 배운 트럼프 카드 게임이 떠올랐다. 화려한 겉모습 뒤의 규칙은 숫자와 도형의 조합뿐이었던 단순한 게임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카드를 아치 모양새로 뒤섞어 본다. 이러한 것들의 쓸모성을 깨닫기까지에는 꽤 많은 트릭들에 대해 이해하여야 한다. 질문들은 숨 쉬듯 던져졌다. 나는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질문들에 응답해 본다. 유일한 언어였다. 정확히 나를 향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삐걱이던 사람들이 비로소 뭍으로 눈을 돌린다. 새로운 문이 열렸다. 답은 어찌 되던 상관없었다.
저도 트럼프를 할 수 있어요!
멈춰 있던 시계 초침이 째깍 – 째깍 -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눈을 감고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돌아오게, 친구!
그곳으로 가면 더 이상 아무도 기다리지 않아.
어기어차 –어기어차 – 흥겨운 리듬이 새어 나왔다.
누워있던 카드 병정들이 일어나 일렬로 행렬을 이루기 시작했다. 같은 선형을 따라 병정들이 차례로 길게 늘어서 움직인다. 병정들은 일제히 손을 잡고는 현란하게 발을 교차하기 시작한다. 움직임은 흡사 물결처럼 큰 곡선을 일구어냈다. 병정들의 옷에는 하나같이 다른 문양의 도형이 새겨져 있었는데, 꼭 맞춰 입은 듯 같은 색을 띠었다. 움직임은 어느새 정렬된 숫자를 일구어낸다.
스트레이트 플러쉬.
나는 광대 옷을 얼른 걸쳐 입고는 행렬에 발을 내디뎠다. 어기어차 – 어기어차 – 방향은 상관없었다. 춤에는 규칙이 없었지만, 나는 천천히 그들을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이었다. 탈출구를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그 동작은 크고 우스꽝스러웠다. 하트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은 카드 병정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나는 승리를 확신했다.
걸음을 빨리할수록 균열은 서서히 붕괴되어 갔다. 손을 맞잡은 병정들은 이내 도미노처럼 겹겹이 스러져 갔다. 스러진 카드 병정들은 신기루처럼 자리에서 사라져 갔다. 남은 병정들이 서로를 부추겨 세웠지만, 그사이 그들의 몸은 퍼즐처럼 듬성듬성 구멍이 나있었다. 그 모습이 흡사 '노페어' 같았다. 사람들은 수정할 것이 많은 듯 공구를 찾기 시작했고, 나는 주머니에서 아주 작은 볼트 하나를 꺼내어 건네주었다.
이야기는 끝이 났다.
그래서 이 모든 이야기들을 무어라고 이름 붙일 건데?
그리고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아무래도 이 세계는 그 퀴퀴한 냄새를 몸에 베지 않고는 시작조차 할 수 없을지 모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