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라는 대질병의 시기가 끝나가고 있다. 꺼내놓은 말이 무색하게 '코로나는 무슨'이라며 코웃음을 치는 사람들을 마주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쉼 없이 일해야 했던 나는 어리둥절하게 그들을 바라본다. 서른의 마감줄에 3년째 강제 칩거 생활을 하며 부딪히는 새로운 관습이란 흡사 SF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낯선 언어처럼 다가섰다. 말이 좋아 관습이지 시대의 희생양을 구하려는 세력들은 관습에 의해 처참히 무너졌는데도 말이다.
'손 소독제 품귀 현상'
이유 없이 물품을 구매해 보는 건 처음이다. 기사로만 접하던 품귀 현상을 매일 들르던 마트에서 보는 것도 처음이다. 한 아름씩 물품을 품에 안고 마트를 떠나는 이들을 바라보며, 남들의 이목을 따라 같은 것으로 덩달아 구매한다. 1만 원의 가치로 남들과 같은 안전을 구매하는 셈이니 영 손해 보는 것이라고 하긴 어렵다는 안일함인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달랐다. 하루는 필요도 없는 파우치를 두 개나 사 오고, 또 하루는 쓰지 않는 물티슈를 세 묶음이나 사 왔다. 냉장고에는 먹지 않은 두부가 두모나 있는데도, 기어코 한 모를 더 사 와서 쟁여두는 것이다.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집에서 지내는 신세에 돈을 쓰는 일을 두고 어머니와 언쟁을 하는 것이 내내 마음에 쓰이지만, 그 시기엔 기피할 수 없는 일 마냥 매번 언쟁이 일어났다.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코로나 19를 지나는 동안 집에서 일어난 변화를 꼬집어 이야기하면 거의 쓰지 않는 물품과 입지 않는 옷가지, 생필품들의 향연라고 나는 명명하고 싶다. 취향도 실용성도 배제된 구매 대란.
품귀 현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형형색색의 마스크는 물론 철 지난 옷가지들이 연일 대량으로 마트로 백화점으로 쏟아졌다. 소비자들의 지갑은 열리지 않는다는 기사 속 후문과는 달리 코로나 여파는 쉬이 잠잠해지지 않았고, 소득이 불규칙한 직종에 한하여 지갑은 열리지 않았다. 나도 그 부류에 속하는 하나였는데, 그럼에도 소비가 하고 싶어지는 날이면 어떠한 이유를 들어서라도 구매 욕구를 채우고야 마는 것이다. 구매욕이란 대체로 꼬박 1주일을 채워 고르고 고른 뒤 갖고 싶은 디자인의 층간 소음용 실내화를 구매하는 것이 전부였다.
아, 선스틱.
SNS에 유행하던 선스틱을 쫓기듯 구매하고는, 얼굴에 바른 뒤 원인도 알 수 없이 몇 날이나 고생한 기억이 있다. 우습지만 내가 기억하는 코로나의 소비란 이런 것이 전부다. 이렇게 소비를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코로나 질병 시대가 저물어 간다. 등 따시고, 배는 곯지 않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돈에 대한 철학도 그렇게 코로나와 함께 사라지는 듯했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아직도 불쑥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를 두고 전쟁에 비유했고, 또 다른 일각에서는 금세 사라질 질병 정도로 치부했다. 전쟁을 염두에 두고 산 이런저런 구호 용품들이 코로나 시기의 내 소비의 전부였고, 새롭게 시도한 구호 용품들은 으레 그렇듯 천덕꾸러기가 되어 쓰임이 얼마 가질 못한 채,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전리품으로 전락했다.
대다수가 그랬다.
시간이 지나자 뉴스에서는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의 수보다 재벌들의 최고치를 기록한 재산 수치들이 연일 보고됐다. 그러한 것들이 대중들의 공감을 산다는 것이 또 놀라웠다. 그러한 것들에 분개하면 할수록 통장의 잔고는 바닥을 이뤘다. 일자리는 여전히 빗장을 굳건하게 잠근 채 패전자들을 향한 시험의 호각을 울렸다. 연계성을 잇긴 어렵지만 변하지 않는 이들은 일자리를 더욱 얻기 힘든 모양새가 되었다.
이런 마음을 이해하는지 휴대폰에는 연신 하루에 1 십원씩 제공하는 퀴즈들이 즐비했다. 급할 땐 단돈 1천 원도 서러운지라 하루에 30분은 꼭 투자하여 몫을 챙겼다. 때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투쟁보다 값지게 느껴졌다. 뿐만 아니다. 생전 신경 쓰지 않던 포인트와 쿠폰, 할인율 등을 신경 쓰며 소비하는 습관은 비단 돈이 없어서만은 아니었다. 친구와 지인보다 기업에 감사하는 시간들이 늘어나는 것을 두고 성장이라고 적어야 할지 몇 번이나 고민했다.
버스비를 아끼려 다섯 정거장을 걸었다.
매번 눈으로만 바라보던 3만 원짜리 제품을 구매하고, 덤으로 1만 원짜리 파이를 아무런 고민 없이 집어든다. 몇 걸음 옮기는 사이에 온몸이 떨려온다. 불현 바닥난 잔고가 떠올랐지만, 파이를 내려놓지 않는다. 덜덜 떨리는 손발은 왜 약자를 통해서만 진정되는 것일까?
건너편으로 무엇이라도 손에 닿는 대로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는 타인의 모습에서 언젠가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같은 물건을 세 번이나 사 오시던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계산을 하고 돌아서는데 인터넷에서나 보던 동작들이 계산원들 사이에서 유행한다. 언젠가는 그러한 행위에 모두가 답례를 하였지만, 어느새 일방통행이 되었다. 나는 이런 것을 두고 대유행이라고 말하였던가 하며 마트를 빠져나온다. 다리가 영 뻐근했지만, 버스비를 아끼고자 다시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가벼워지는 통장과 밀려오는 후회 속에서 우리는 돈을 통해 얼마나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입고 있는 것, 바르는 것, 먹는 것은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이자 살아온 시간을 드러낸다. 코로나 대유행이라는 시간 동안 거리에는 새로운 가게들이 즐비하게 줄지어 늘어섰다. 나는 거리에서 같은 옷과 같은 얼굴들을 마주하고 있다. 가방으로는 쓰지 않는 립스틱이 몇 개나 나뒹군다. 몇 블록이면 쓸모없어질 것들로 전락하는데 채 2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정확한 것이라곤 없었다. 휩쓸리듯 달라지는 언어의 모양새를 두고 어떤 이는 필수 불가결한 변혁이라고 칭했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돌을 던지지도 못했다. 이것 또한 불필요한 지출로 여겨졌다.
목구멍처럼 차오르는 슬픔을 삼키며 일터로, 거리로 향하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들은 길고 긴 터널을 지나며 수행자와 같은 자세로 서로를 밀어주고 받쳐주며 세간의 손가락질을 덤덤히 맞서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진화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새롭게 떠오르는 약자들을 바라본다. 여전히 감이 서지 않는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