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민망한 순간들에 나열하라는 말에 꽤 굳은 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이미 다 적어낸 것들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 이유는 무엇일까? 게다가 보기만 해도 속이 뒤틀리거나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들 뿐일 텐데도 그들은 그렇게 갈구했다.
잠깐, 그들이 누구였지?
나는 이러한 걸 적어내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의외로 아주 빨리 그러한 순간들에 대해 써내려 갔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지하철 안에서도 손바닥만 한 작은 거울 안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일이 그렇게 부끄럽다. 그러한 이유에 대해 어렸을 적 몇 번인가 의문을 가졌지만 답을 내지 못했다. 아마도 적나라한 답을 인지한다는 사실조차 어딘가에서 거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에 와 휴대폰을 켜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는, 아 적나라한 모공의 크기를 차마 두 눈으로 사살하기 힘든 나이였는지도 모르겠다 한다. 사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러한 일들이 어딘가 낯부끄럽다.
돌이켜 보면 기름종이를 꺼내 얼굴을 닦는다던가, 코를 소리가 나도록 푼다던가, 치아 사이로 손을 넣어 음식물을 빼낸다거나, 트림을 크게 한다던가 뭐 이런 유독 상스러운 행동에 약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시간이 지나도 주변으로 뒷말이 꽤 많지만, 나는 여전히 족보가 있는 양반 가문에서 권위적인 가부장제 아래 예의를 중시하며 자랐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러니까 군더더기를 제외하면 예의가 없는 행동을 무척이나 무례하게 여긴다고 하겠다.
어릴 적엔 밥을 먹다 자주 혼났다. 식사를 하며 말을 길게 한다던지, 젓가락과 숟가락을 구분 못한다던지, 식사 도중 TV를 오래 본다던지 하는 이유에서였다. 아버지의 성격이 유독 불같아서 성격이 어그러질 때면 먹던 밥상이 엎어질 정도였는데, 그런 사유로 알음알음 스스로 더욱 엄격해졌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지만, 지금도 공공장소 및 식사 중 기본적인 예의가 지켜지지 않으면 저도 모르게 멈칫하곤 한다. 이제는 꽤 유연해져서 적당히 농을 던지며 상황을 모면하기도 하는데, 여전히 상황이 불편한 것을 감안할 때 제 성격과도 꽤 맞는 듯하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이러한 시간들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너무 어려워하지 말고 일단 살아보라고 하겠다. 우리가 불편해하는 시간들을 겪지 않는다고 불편한 순간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걸 왜 읽고자 하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