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울창하게 드리운 숲은 뜨겁게 내리쬐는 여름날의 뙤약볕을 두고 나무라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예고 없이 찾아왔다. 몸에 밴 겸손과 온화한 미소, 유연한 유머 감각, 철저한 자기 관리보다 눈이 가는 건 무엇보다 삶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태도였다.
"참 이상하죠.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았다고 하기엔 너무 정갈한 겁니다. 벌레가 머물다 간 자리마저도 어긋남이 없죠. 보통 잡초가 자랄 땐 심은 자리를 알 수 없도록 엉클어져 있거든요."
나는 그들의 등장에 변함없이 호의를 표한다. 도무지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볕 아래에선 누구라도 그랬을지 모른다. 단조롭게 이어지는 의문들이 하나의 오름길로 이어지는 것이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점점 높아지는 덩굴을 바라본다.
그들은 마을에 닿고도 한참이나 짐을 풀지 않은 채, 흡사 정찰을 앞둔 매처럼 굴었다. 높은 언덕에 올라가거나 매일 같은 모양새의 산책로를 독단적으로 걷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골려주고 싶은 마음을 꽁 감추고는 그들을 관찰한다. 지리를 모르는 외부인들을 향해 아주 약간의 텃세를 부려 본다.
"그렇게 매번 알기 쉬운 태도로는 눈길을 끌기 어렵다고요."
흡사 흥미로운 먹잇감을 발견한 것처럼 관심을 표했다. 닷새만이었다.
"무얼 가지러 왔죠? 모두가 아무 관심도 없는 척 방문한다고요. 마을에선 방문객들을 위해 매번 잔디를 깎고 잡초를 솎아내는 수고를 해야 하는데도 말이죠. 그렇게 애매한 태도로는 어떠한 호의도 살 수 없어요."
그들은 응당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은 채 약간의 미소로 응답했다. 솎아내야 할 잡초가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소매를 걷어붙이고 도울 것처럼 번듯한 자세로 말이다. 나는 호기롭게 말을 붙인 것을 이내 후회했다. 속내라도 낚인 기분이었다.
"움직임이 둔해요. “
나는 애꿎은 덤불을 발로 쓸어냈다.
"그렇게 밀어붙이기만 하면 끝내 제대로 자라지 못할 겁니다. “
"하지만 여긴 정원이라고요. “
그들 중 제일 어른으로 보이는 하나가 말했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아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생명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그건 알고 있겠죠? 때론 이론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답니다. “
그들은 말을 끝으로 걸음을 옮겼다.
반문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입가를 맴돌았지만, 이번엔 결코 내뱉지 않았다. 어정쩡한 태도로는 더 이상 어려울지도 모른다. 어쩐지 의욕이 솟지 않았다. 그런 부분에 대해 받아들이려 하니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자리를 찾지 못하고 빼쭉하게 솟아난 잡초에도 이론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왜 받아들이지 못한단 말인가?
나는 그들이 보이지 않도록 잎이 길게 늘어진 버드나무 아래로 몸을 숨기고는 정갈한 덤불 옆으로 빼쭉하게 자라난 잡초를 마구잡이로 잡아 뜯어내기 시작했다. 별것 아닌 일에도 기분이 쉬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은 더 이상 시야에서 보이지 않았다.
이때 품위 없는 여인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그녀는 마을에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함에도 구설수 하나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
"사람은 누구나 한계치가 있다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구. 그들은 곧 그 한계를 드러낼 거야. 나는 자신 있어. “
마을은 여전히 외지인을 향해 경계의 시선을 드러냈다.
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더 알아내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 같이 여겨졌다.
"하지만 영영 한계가 없는 존재에 대해 인정해야 할지도 몰라요. 아무리 솎아내도 결국 솟아나는 새싹들을 두고 이치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죠.“
"나는 여우 같은 게 좋아.“
나는 아무 말 없이 손에 쥔 잡초를 흔들고는 정갈하게 매만져진 덤불을 피해 휙 집어던졌다. 그녀는 눈치 없이 말을 이어갔다.
"옷을 벗기는 것은 간단해. 중요한 건 그러한 생각에서 벗어나는 일이야. 아무도 누군가의 알몸에는 관심 없다고. 무슨 말인지 알지? 너무 열 내지 않는 게 좋아.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할 뿐이야.“
그녀는 정성스럽게 솎아낸 자리를 보듬었다.
"그들을 관찰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셈이지?"
나는 조금 가라앉은 기세로 응답했다.
"저는 좀 답답하더라고요. 코앞까지 닥친 현실의 문제는 일절 외면한 채 고독한 영웅들의 일기장을 반복해서 본다는 것이요.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 위안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정녕 모르는 걸까요?
이야기를 하는 이들은 많아요. 하지만 삶을 이해하는 사람은 적죠. 고전처럼 입에서 입으로 구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려면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하는 걸까요. 모두가 행한 것에 대해 묻지 않죠. 이건 언어의 문제가 아니에요. 소통의 문제죠. 그리고 우리는 언어를 학습합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요.“
나는 말을 끝내고는 누군가 떠밀기라도 한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드나무 밑을 빠져 나왔다. 해소되지 않는 갈증으로부터 달아나기라도 하듯 달리고 달렸다. 숨은 금세 차 올랐다. 매번 달리던 길을 비껴 정원을 빠져나가자 그들은 마치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자리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