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놀이

by Letter B






나는 이제 정령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이들은 심심하면 출몰하는 그런 집단이 아니다.

유연하고 넓은 식견을 가지고 사유하는 자만이 만날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

그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세간에서는 이들을 두고 지박령 즉, 귀신이라고 일컫는 이도 있었다.

나는 굳이 정령이라고 표현하고자 한다.


그들은 쉼 없이 이야기한다. 밤이고 낮이고 이야기는 끊이지 않는다.

이야기는 주로 누군가를 지시하지 않는다. 지시 대상이 불분명한 허무 맹랑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귀를 기울이다 보면 꽤 쓸만한 삶의 건더기 같은 것들이 묻어 나와 구경하는 일이 잦았다. 대게는 흘려 넘겨도 좋을만한 것들이었다. 그들을 읊자면 나의 존재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은 채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그 일이란 것도 보통의 사람에겐 영 쓸모없는 것들 뿐이라 가능한 그들의 주체가 되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이 공존하기 위한 요령이라면 요령이었다.


하루는 책을 펼쳐 손에 들고는 그들의 이야기에 동참했다. 그럴 때면 지금까지와 달리 놀라우리만치 어른스러운 모습을 띠곤 했는데, 나는 이런 부분이 무척이나 신기하여 그들을 두고 그렇게 정의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아주 진귀한 것을 발견한 양 귀한 대접을 받곤 했는데, 나는 그런 대접이 간혹 부담스러워 쓰던 글을 멈추고 그들의 이야기가 사실인 양 자세를 낮추었다. 이제와 고백이지만 무척이나 번거로웠다.


그들은 그 존재를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상에서 활기를 띠었지만, 그것은 오직 혼자 있는 시간뿐이었다.

밖으로 나서 타인을 만나거나 대외적인 모습을 취할 때면 흡사 인간인 마냥 자취를 감추고 소리를 줄였다. 소리의 모양도 각양각색이었다. 그 많은 모양새가 어느 틈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고개를 내미는지 대게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어느 사이엔가 혼자 있는 시간엔 그들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나는 점령당하였다고 생각한다.

점령하도록 두었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발견하는 것들은 주로 잊고 있던 것들이었다. 버려지거나, 버려도 될 만한 것들이라고 여겼다.

꽤 쓸만하다고 생각되기까지 무척이나 외로운 시간이 지속되었다.

구멍이 난 것처럼 이야기는 멈출 줄 몰랐다.

틈새를 메우기 위해 나는 한참이나 물러서 고독한 사투를 병행해야 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간 하늘을 올려다본다.

손 볼 곳 없이 유난히 채광이 좋은 날이다.

또렷해진 사물의 경계를 바라보다, 차가워진 공기를 손 끝으로 간신히 맞이한다.

그들은 환호했다.


세상은 깨어있는 이와 그렇지 못한 이를 구분하듯 바지런히 속삭였다.

그 언어는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습득되지 않았다.

불필요한 존재로 하여금 세상은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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