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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항현 Aug 09. 2024

임계점의 경이: 작은 변화가 전체 변화를 촉발

한겨레 사이언스온 연재 2회(2010.12.29)

“모든 것은 가능한 한 단순해야 한다. 하지만 더 단순해서는 안 된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다고 알려진 이 문장은 복잡한 현상 뒤에 숨은 단순한 원리를 찾아내려는 우리들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단순함이 중요하다고 강조할 뿐 아니라 지나치게 단순하여 정말 필요한 것까지 무시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너무 복잡하면 다루기 어렵고 너무 단순하면 하나마나 한 소리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너무 단순하지도 않고 너무 복잡하지도 않은 최적의 이론이나 모형은 어느 분야에나 있기 마련입니다.

통계물리학의 상전이와 임계현상 연구에서는 이징 모형(Ising model)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자석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주변의 쇠붙이를 끌어당깁니다. 그런 자석도 가열을 하여 온도를 매우 높이면, 즉 임계온도보다 높은 온도에서 자성(더 정확히는 강자성)을 잃고 보통 쇠붙이처럼 변합니다. 이런 현상을 자석을 이루는 입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이해하고자 만들어진 모형 중에서도 가장 단순한 것이 이징 모형입니다. 각 입자는 양자역학에서 밝혀진 ‘스핀(spin)’이라는 성질을 갖는데, 쉽게 말해 위 그림처럼 입자를 관통하는 화살표가 하나 있다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이 화살표는 위 방향 또는 아래 방향 중 하나를 가리키며 주변 입자들과의 상호작용이나 주변 환경에 의해 위에서 아래로 또는 그 반대로 뒤집히기도 합니다. 우리가 스핀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이게 거의 전부이므로 행여 양자역학을 모른다고 겁먹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앞으로 사회현상에 대해 유추할 때 스핀이 가리키는 방향은 어떤 개인의 의견이나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셔도 좋습니다. 더 일반적인 스핀 모형에서는 화살표가 더 자유롭게 회전할 수도 있지만 일단 위와 아래만 생각합니다. 입자들이 모두 위 방향을 가리키거나 모두 아래 방향을 가리키면 자석이 되고 제각각 따로 움직이면 자성을 잃은 보통 쇠붙이가 됩니다.


더 구체적으로, 입자들이 바둑판같은 격자의 각 점에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합니다. 또한 입자는 왼쪽, 오른쪽, 위, 아래 네 개의 이웃한 입자하고만 상호작용을 한다고 가정합니다. 이웃한 두 입자의 스핀은 같은 방향을 가리키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스핀들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힘입니다. 동시에 이 입자들의 행동은 온도의 영향도 받습니다. 온도는 대개 ‘질서’에 대비되어 ‘무질서’를 만들어내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온도가 높아지면 어떤 식으로든 무질서한 경향이 강해집니다. 질서의 정도를 나타내는 변수를 질서변수라 부른다면, 온도가 높아질수록 질서변수는 줄어들 것입니다. 다음 그림을 볼까요?



왼쪽 그림에서 질서변수를 나타내는 곡선은 온도에 따라 부드럽게 줄어듭니다. 오른쪽 그림에서는 뭔가 급격한 변화가 있지만 곡선이 이어져 있으므로 여전히 연속적입니다. 왼쪽 그림에서 질서 상태와 무질서 상태를 어떻게 구분할까요? 이를테면 저온일 때 질서변수 값의 10%보다 크면 질서 상태, 작으면 무질서 상태라고 자의적으로 정의할 수는 있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서로 다른 상태’가 없습니다. 그냥 하나의 상태이며 양적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오른쪽 그림에 보이는 급격한 차이는 단지 많다/적다라는 양적 차이를 넘어서서 0보다 크냐 0이냐 하는 질적 차이를 보여줍니다. 바로 이러한 질적 차이에 의해 비로소 ‘서로 다른 상태’가 구분되며 수학적으로는 무한대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오른쪽 그림에서 질서변수가 0이 되는 순간(완전한 무질서 상태), 즉 임계온도에서 곡선의 기울기는 무한대입니다. 이 무한대를 나타내는 방법 중 하나가 눈금잡기(scaling) 관계입니다.


임계온도보다 낮은 온도에서: 

임계온도보다 높은 온도에서: m=0


여기서 m은 질서변수이고 T는 온도이며 아래첨자 c는 임계점을 뜻합니다. β는 온도가 임계온도에 가까워질 때 질서변수가 얼마나 빠르게 줄어드는지를 나타내는 지수로서 여기서는 임계지수(critical exponent)라 부릅니다. 바둑판 위의 이징 모형에서 β는 1/8이고, 지난 글에 소개했듯 임계점 근처에 있는 유체의 경우 β는 1/3입니다. 모형의 구체적인 세부사항에 따라 m_c나 T_c가 달라져도 임계지수는 변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역시 보편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는데,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온도를 높이면 질서변수가 줄어든다는 사실은 직관적이고 당연하지만, 어떤 특정 온도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 질서변수가 0이 된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없습니다. 나머지는 고정시키고 입자 하나만 보면 이웃한 스핀 방향을 따라가려는 질서 경향과 온도에 의한 무질서 경향이 경쟁하며 이기는 쪽이 이기는 만큼만 그 입자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입자 하나의 행동에서는 급격한 변화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입자들이 모인 시스템 전체에서는 위 오른쪽 그림처럼 한 경향이 다른 경향을 완전히 압도하는 질적 변화가 나타납니다. 이렇게 부분만으로 전체적인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다시 ‘상호작용’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일반적으로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하는 현상을 상전이(phase transition)라고 하며, 전이가 일어나는 그 순간을 임계점이라 하고, 이 임계점 근처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가리켜 임계현상(critical phenomena)이라 합니다.


단순한 이징 모형이 과연 복잡한 사회현상에 대한 힌트를 줄 수 있을까요? 이징 모형의 결과에 대해 더 논의하기 전에 2차원 이징 모형을 직접 적용해볼 사회현상을 거칠게나마 상상해보겠습니다. 이를테면 교통통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아서 대부분 주변 이웃들과 의견을 주고받던 시대에 찬반을 가리는 국민투표 사안이 있었다고 합시다. 각 유권자는 찬성과 반대 둘 중 하나의 의견을 가지므로 이징 스핀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물론 기권을 비롯하여 다양한 대안이 있지만 일단 무시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주변 사람과 같은 의견을 가지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뉴스나 정보를 통해 의견을 바꾸기도 하고 때론 어떤 특정한 의견 없이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온도’에 해당하는 사회적 환경이 무엇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의견의 다양성이나 개인주의 성향을 인정하는 분위기 또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에 비추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편의상 이를 ‘이징 사회’라 부릅시다. 억지스럽지만 일단 이런 그림을 염두에 두고 다시 이징 모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한 경향이 다른 경향을 압도하는 상태보다는 임계점 근처에서 흥미로운 현상이 발견되는데 이를 위해 상관길이라는 개념을 소개합니다. 임계온도보다 높게 온도를 고정시킨 상태에서 입자 하나의 스핀을, 이를테면 위 방향이었던 스핀을 아래 방향으로 뒤집는다고 생각해봅시다. 이때는 무질서 경향이 강해서, 극단적으로 옆에 있는 스핀이 뒤집히건 말건 상관하지 않는다면 기껏해야 주변에 있는 이웃들에게만 잠시 영향을 끼칠 뿐입니다. 반대로 임계온도보다 낮은 온도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 전체적인 질서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한 입자의 스핀을 뒤집으면 이웃한 입자들에게는 영향을 줄지 몰라도 더 멀리 있는 질서 잡힌 입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기에 역부족입니다. 즉 질서 경향이든 무질서 경향이든 하나가 다른 하나를 압도하고 있다면 입자 하나의 변화가 전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너무 서로 상관하지 않는 사회에서도 너무 꽉 짜이도록 질서가 형성된 사회에서도 한 사람의 작은 변화가 전체적인 변화로 발전하기 힘들 거라는 유추를 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질서 경향과 무질서 경향이 서로 대등한 상황에서는 얘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입자 하나의 변화가 이웃들에게 영향을 주면 영향을 받은 그 이웃이 자신의 이웃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쇄반응이 충분히 오래, 충분히 멀리까지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 임계점에서는 마련되어 있습니다. 물론 입자 하나의 작은 변화가 언제나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커다란 변화가 애초에 거의 불가능한 질서 상태나 무질서 상태와는 달리 임계점 근처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결코 작지 않은 확률로 존재합니다. 이제 임계점에 놓인 이징 사회를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주변의 의견을 따르는 게 좋을지 주변과 무관하게 의견을 선택하는 게 좋을지 긴가민가한 상태에서는 질서 경향의 특징과 무질서 경향의 특징이 모두 나타납니다. 각 동네는 어느 정도 합의된 의견을 갖고 있지만, 동네마다 그 합의된 의견이 달라서 전체적으로는 어느 한쪽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의견이 위인 동네와 아래인 동네의 경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 어떤 이유로 인해 위에서 아래로 의견을 바꿨다고 합시다. 이로 인해 위 의견을 갖고 있던 이웃이 영향을 받아 아래로 의견을 바꾸고, 이것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다 마침내 위 의견을 가졌던 동네사람이 모두 아래 의견을 가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반대 상황도 똑같이 가능합니다.


한 입자의 변화가 얼마나 ‘멀리까지’ 영향을 미치는가를 상관길이(correlation length)로 정의하며 그리스 문자 크시(ξ)로 나타냅니다. 질서 상태와 무질서 상태에서 상관길이는 유한합니다. 하지만 임계점 근처에서는 온도가 임계온도에 가까워질수록 상관길이는 무한대로 발산하며, 얼마나 빠르게 발산하는지는 상관길이와 온도 사이의 임계지수 ν로 결정됩니다.



앞에 소개한 바둑판 위의 이징 모형에서 ν의 값은 1입니다. 그런데 바둑판의 크기가 유한하므로 상관길이는 바둑판의 크기에 의해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무한히 커서 점의 개수도 무한히 많은 바둑판 위의 이징 모형이라면 상관길이도 그에 따라 무한히 커집니다. 각 입자는 그저 자신의 몇 안 되는 이웃들에게만 영향력이 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의견이나 정보 또는 혁신적인 생각이 너무도 멀리 있어서 전혀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전파되는 일은 중간에 있는 모두가 협조하지 않으면 결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말했듯이 심지어 인터넷이나 명시적인 대중매체가 없다고 가정한 2차원 이징 사회에서도 나타납니다. 이런 현상을 ‘미시적 상호작용으로부터 거시적 현상의 발현’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거시적 현상’의 특징은 주로 임계지수의 값으로 표현되는데 임계점에 가까워질수록 거시적 현상이 얼마나 빨리(또는 느리게) 드러나는지를 정량적으로 나타내주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많은 가정을 했습니다.

1) 스핀이 위 또는 아래 중 하나만을 가리킨다.

2) 각 입자가 2차원 평면인 바둑판 위의 점들에 놓여 있다. 

3) 각 입자는 이웃한 입자하고만 상호작용한다.  

4) 이웃한 입자는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경향이 있다.


1번은 입자 자체의 성질에 관한 가정이며 나머지는 입자 사이의 상호작용에 관한 가정들입니다. 이런 가정들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를테면 2번 가정을 바꾸어 바둑판이 아니라 육각형 벌집 벽의 각 교차점 위에 각 입자를 올려놓은 모형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각 입자의 이웃수는 바둑판은 4, 벌집은 3으로 달라집니다. 또는 3차원 구조물인 정글짐의 각 교차점 위에 입자를 올려놓은 모형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바로는 입자가 놓인 공간 차원만 같다면 이웃수와 무관하게 같은 임계지수가 얻어집니다. 반면 공간 차원이 달라지면 임계지수도 달라집니다.


입자의 성질에 관한 1번 가정을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스핀이 위나 아래가 아니라 더 일반적으로 여러 개 값 중 하나를 갖는 경우는 폿츠 모형(Potts model)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핀이 가질 수 있는 값의 개수에 따라 임계지수가 달라집니다. 이외에도 스핀 하나가 여러 개의 값으로 표현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시계바늘처럼 빙빙 돌 수 있는 스핀 모형은 XY 모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역시 이징 모형과는 매우 다른 임계현상을 보여줍니다. 정리하면, 스핀이 가질 수 있는 값에 따라, 스핀들이 놓여 있는 공간 차원에 따라 다른 임계지수가 나타납니다. 즉 β나 ν의 값이 2차원 이징 모형은 1/8과 1이며, 3차원 이징 모형은 약 0.33과 0.63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편성이라고 해서 세상의 모든 현상이 하나의 식으로만 표현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썼듯이 스핀의 성질에 따라, 상호작용의 구조(특히 스핀이 놓여 있는 공간 차원)에 따라 ‘여러’ 보편성이 가능합니다. 같은 임계지수로 특징지어지는 현상들 또는 모형들을 묶어 하나의 부류로 나타내는데 이를 보편성 부류(universality class)라 합니다. 화학자들이 원소의 주기율표를 만들듯이 입자물리학자들은 근본입자에 관한 표를 만들며 통계물리학의 임계현상 연구자들은 보편성 부류에 관한 표를 만듭니다. 아직 끝난 일이 아닙니다. 기존의 가정들을 완화하거나 일반화하면서 새로운 보편성 부류가 계속 발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비평형 임계현상에서는 기본 입자의 성질과 상호작용 구조뿐 아니라 더 다양한 요인들이 임계지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만큼 보편성 부류표도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편성 부류를 구분하는 일은 복잡한 현상에 내재된 다양한 요인들 중에서 거시적 현상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인과 그렇지 않은 요인을 가려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어떤 거시적 현상을 미시적 구성요소의 성질과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 구조로부터 재구성하고 다양한 요인들을 넣거나 빼보면서 거시적 현상이 변하는지를 관찰함으로써 중요한 요인과 그렇지 않은 요인을 구분해내는 체계적인 방법론이 바로 통계물리학의 상전이와 임계현상 연구입니다. 이 방법론은 구성요소와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관한 일정한 조건만 만족시킨다면 그 어떤 현상에도 적용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2차원 이징 모형은 가장 단순한 모형이고 또 그만큼 많은 가정이 필요하므로 실제 사회에 적용하기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요인을 포함하는 더 현실적인 모형들도 많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상호작용 구조에 대해서는 규칙적인 격자가 아닌 허브가 존재하고 좁은 세상 효과가 있는 복잡연결망 연구를 참고하면 됩니다. 복잡연결망 위의 각 노드에 이징 스핀이 놓여 있다고 가정하면 역시 상전이가 나타날까, 나타난다면 기존의 보편성 부류에 포함될까 아니면 새로운 보편성 부류를 만들어낼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도 이미 연구되어 있습니다. 스핀의 성질에 대해서는 찬성, 반대, 기권 중 하나의 값을 갖는 폿츠 스핀 모형을 연구해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찬반을 가리는 투표가 아니라 개인이 여러 항목에 대한 의견을 갖는 모형을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이웃한 사람들이 같은 의견을 가지려는 경향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 의견을 가지려는 경향 역시 다른 통계물리학 모형으로부터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회현상에 더 가까운 모형으로 이웃한 사람들 중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다수결 모형(majority model)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형의 단순함과 현상의 복잡함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통계물리학의 모형에서 독립적인 변수는 기껏해야 서너 개를 넘어가지 않습니다. 저 간단한 2차원 이징 문제조차 정확히 풀리기까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현상이 복잡한 만큼 많은 변수가 필요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 그 중 어떤 변수 또는 요인이 중요하고 다른 건 그렇지 않은지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단순한 모형에 기대어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테면 경제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게임이론 중에서도 죄수의 딜레마 게임의 경우 두 행위자는 협조나 배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며, 그 결과에 따라 보수를 받습니다. 가능한 의견 또는 행위의 개수가 두 개라는 면에서 이징 스핀의 단순함에 비견될 수 있습니다. 게임의 틀은 단순하지만 이로부터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많은 함의를 이끌어낼 수 있으므로 그만큼 중요하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결국 모형의 단순함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중요한 건 인간 행동에 대한 통찰력이며 그 본질을 얼마나 단순하고 명쾌하게 표현하느냐일 것입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자연현상을 이해하는데 주력해온 물리학자들이 얼마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을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는 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이러한 가능성을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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