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트릭스>(1999)의 마지막 쯤에 나오는 장면이 있다. [스포일러 주의] 니오가 어느 건물 복도에서 요원들과 싸우다가 문득 복도를 0과 1로 이루어진 코드로 보기 시작하는 장면이다. 현실이라 여겼던 것이 사실은 프로그램의 일부였음을 깨닫는 장면이다. (사실 영화에 대한 아주 정확한 묘사는 아닌데 대충 메시지는 그러하다.) 마침 나는 2000년에 연구실 선배가 소개해준 와츠와 스트로가츠의 <네이처> 논문(1998)을 통해 네트워크 과학을 접했다. 당시는 네트워크 과학의 태동기로서 아직 "네트워크 과학(network science)"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전이었다. 나에게 네트워크는 바로 니오의 깨달음 같은 것이었다. 이 세계가 네트워크였던 것이다.
이 세계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다. 이 기본 입자들은 서로 상호작용한다. 입자를 노드로, 상호작용을 링크로 생각하면 상호작용하는 입자들로 이루어진 이 세계가 매우매우매우매우 거대한 네트워크가 된다. 거칠게 계산하면 눈에 보이는 천체의 총 질량은 대략 양성자 10^82 개에 해당한다고 한다. 우주를 이루는 양성자들과 중성자들을 노드로 생각하면 우리 눈에 보이는 우주는 노드 10^82 개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로 볼 수 있다.
물론 네트워크에서 커뮤니티 즉 군집을 발견한 후 군집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네트워크를 재구성할 수 있다. 지구 표면에 모여 사는 사람들을 각각의 노드로 생각하면 2023년 현재 약 80억 개의 노드로 이루어진 사회연결망을 만들 수 있다. 다시 규모를 조금 낮춰보자. 예를 들어 우리가 밥을 먹는 행위도 네트워크로 이해할 수 있다. 쌀 한 톨도 하나의 네트워크 덩어리다. 그 쌀을 먹는 한 개인 역시 하나의 네트워크다. 사람은 쌀을 씹어 잘게 분해한 후 여러 소화효소의 도움으로 포도당으로 만들어 소장에서 흡수한다. 즉 밥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의 네트워크가 분해되어 다른 네트워크에 흡수되는 과정이다.
이렇게 보면 이 세계가 원자로 이루어졌다는 사실만큼이나 이 세계는 네트워크라는 사실도 참이다. 이제 주변을 돌아보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보일 것이다. 그래서 네트워크 세계관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물리법칙을 네트워크 과학을 이용하여 재해석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도 해볼 수 있다. 사실 정확히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지만 스티븐 울프람이 최근에 비슷한 시도를 한 적이 있다. 네트워크 과학은 짧게 보면 1990년대 후반에 시작되어 25년이 되어간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말이다. 그래서 아직은 거친 질문이지만 한 번 던져 보려 한다. 네트워크 과학이 더 발전하면 궁극의 물리법칙처럼 이 우주 네트워크를 설명하는 궁극의 '네트워크 법칙'으로 완성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