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의 밤: 술에 취한 남편과 홀로 남겨진 며느리

돈 많은 시어머니, 눈물만 많은 며느리

by 톡소다

인싸인 남편은 늘 바빴다.

대학원을 다니며 일을 했고, 퇴근 후 술자리를 갖는 것이 일상이었다.

(모임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했다.)


출산 당일 저녁에도 전화로 말했다.

“오늘 학기 마지막이라… 한 달 뒤면 출산이니까 마지막으로 술 좀 먹고 올게.”

(술자리를 말리는 것을 포기하고, 이제는 새벽 6시 이전에는 집에 돌아오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늘 그렇듯, 그날도 홀로 저녁을 먹고 있었다.

배에서 하는 느낌이 일더니 곧 따뜻한 물이 흘러내렸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양수가 터졌다.


대학원 모임 중이던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으로 가겠다고 알렸다.

식탁을 급히 치우고, 미리 싸둔 캐리어를 들고 현관문까지는 자신 있게 걸어갔다.

하지만 문고리를 잡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몸을 덮쳤다.


결국 차로 5분 거리의 시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남편도 병원에 도착했지만, 진한 술 냄새를 풍기며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어머님은 새벽 6시에 유도분만 촉진제를 맞출 예정이니 다시 오겠다고 했다.

나는 조는 남편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두 분 모두 잠시 집에 다녀오라고 했다.


홀로 남은 침대에는 한기만 남았다.

천장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엇을 믿고 그 낯선 공간에 혼자 있었던 걸까.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진통이 빠르게 찾아왔다.

병원에서는 보호자를 찾았고, 남편에게 전화했지만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어머님도 받지 않아 결국 아버님께 전화해 남편을 깨워 달라고 해야 했다.


잠시 뒤, 남편과 시어머니가 다시 도착했다.

출산이 임박하자 병원에서는 보호자 1명만 들어올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남편이 들어오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라는 이유로 시어머니는 보호자 자리를 차지했다.


낯선 고통 속에서 어머님은 너무 무거운 존재였다.

소리조차 마음껏 낼 수 없었다.

흐느끼며 “살려주세요…”라는 말만 겨우 뱉었다.


출산을 마치고 병실에 누워 있을 때, 시부모님이 들어와 말했다.

“둘째는 아들을 낳아야지.”


아기를 낳은 지 몇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아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순간, 내가 제대로 들은 말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어안이 벙벙했다.


잠시 뒤, 시어머니와 단둘이 남았다.

어머님은 물었다.

“너네 돈은 있어? 병원비는 어떻게 할 거야? 산후조리원 비용은?”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곧이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병원비랑 조리원비 내가 내줄게.”


그러나 남편과 아버님이 들어오자 표정과 말투는 금세 달라졌다.


시부모님이 나간 뒤, 나는 남편에게 매달리듯 말했다.

“그 돈 받지 말자. 우리 통장에 있는 돈으로 하자.”


남편은 무엇이 문제냐는 듯 물었다.

“엄마가 내준다는데 뭐가 문제야?”


며칠 뒤, 조리원 퇴소를 앞두자 시어머니는 말했다.

“친정에 꼭 가야 해? 몸조리는 조리원에서 두 주 있었으면 됐지.”


나는 친정에서 조리할 수 없다면 시댁에서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어머님은 말했다.

“아기 울면 아버지가 잠을 못 자. 우리 집에서는 어려워.”


결국 친정으로 가겠다고 하자, 시어머님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나는 어떡해? 뒤돌아서면 아기가 보고 싶고 생각이 나는데…

주말마다 너네 친정으로 갈게. 그리고 매일매일 사진 보내.

꼭 가야겠니? 안 갔으면 좋겠는데.”


말문이 막혔다.

가슴 깊은 곳에서 서러움만 차올랐다.


그날 저녁, 일을 마치고 온 남편에게 물었다.

“몸조리하러 친정 가는 게 그렇게 못마땅한 일이야?”


남편은 답했다.

“엄마가 당연히 몸조리하러 친정에 다녀와야지,라고 하던데… 네가 잘못 알아들은 거 아니야?”


늘 그랬다.

시어머니는 남편이 있을 때와 나와 단둘이 있을 때 말의 온도가 달랐다.

단둘일 때는 차디찬 얼음 같았다.


나와 단 둘이만 있을 때는 ‘너’, ‘야’라고 불렀다.

가족들 앞에서는 내 이름을 불렀다.

남들 앞에서는 ‘우리 공주’라고 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티를 낼 수 없어 억지웃음을 지어야 했다.


나는 그저 '누군가의 며느리'로,

화목해 보이는 가정의 한 조각으로 존재해야 했다.


이 결혼에서 남편은 내 편이 아니었다.

시댁에서는 투명인간 같았고, 외딴섬에 혼자 고립된 것처럼 외로웠다.

누구의 며느리로 살며, 나를 조절하며, 나를 지우며 살았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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