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을 미워하지 않기 위한 기도

‘하느님, 제가 어머님을 미워하지 않게 해 주세요.’

by 톡소다

친정으로 몸조리를 하러 가기 전까지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다행히 큰 문제없이 시간을 보냈고,

몸조리가 끝난 후 나는 아기와 함께 13평의 신혼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님은 그동안 아기가 보고 싶었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좁디좁은 집으로 찾아오셨다.

차로 5분 거리에 살면서 “나, 지금 출발한다.”라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몇 분 뒤면 도착했고,

아기와 자고 있어 전화를 받지 못하면 문을 두드리며 “나왔어~”라고 하며 들어왔다.


어제도 왔던 어머님은 다음 날도 또 찾아왔고,

“아기가 눈 떠서 노는 모습 보고 싶다”며 자고 있는 아기를 깨우기도 했다.

낮잠을 못 자 피곤해진 아기는 저녁이 되어 달래 지지 않아 결국 자지러지게 울었고,

그제야 “얘, 애 재워라.”라는 말만 남긴 채 홀연히 집을 나가곤 했다.


몹시 지친 아기는 안아도 달래도 좀처럼 잠들지 않아 한 시간 넘게 안고 있어야 했고,

그동안 내 등에는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옷이 흠뻑 젖었다.

아기가 잠들면 나도 기운이 빠져 밥 한 숟가락 넘기지 못한 채 쓰러지듯 잠들었다.


그렇게 1년을 버티듯 보냈다.

돌잔치를 준비하던 어느 날, 문득 거울 속의 나를 보니 임신 전 몸무게로 돌아와 있었다.

그만큼 살이 쭉쭉 빠져버린 시간이었다.

‘다이어트는 역시 맘고생 다이어트’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란 걸 뼈저리게 알게 된 시간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날도 주말이라 시댁에 갔고,

어머님은 선물로 들어온 돌문어를 삶아 주셨다.

맛있게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있는데 어머님이 물었다.


“야, 너 돌문어 먹어봤니?”


곰곰이 생각해도 기억이 선명하지 않아

“먹어본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어머님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얘, 돌문어는 여수에서만 잡히는데 네가 이걸 어디서 먹어봐?”


‘야’라고 부르는 호칭이 싫었다.

“네가 이걸 어디서 먹어봐”라는 말에는

‘너 같은 게 뭘 알겠어’ 같은 하대가 깔려 더 쓰라렸다.


나에게 무례한 건, 내가 선택한 결혼이니 감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댁에서 우리 부모님을 “너네 엄마, 너네 아빠”라고 부르는 것,

그 하대만큼은 도저히 삼켜지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늘 남편을 ‘○서방’, ‘자네’라고 불렀다.

상대 부모님도 ‘사돈 어르신’이라 부르며 예를 갖추셨다.

하지만 시댁에서는 단 한 번도 그런 존중을 느낀 적이 없었다.


점잖은 말투로 상처만 남기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그 입이 미웠다.

이러다가는 ‘싫어하는 것’을 넘어서

진짜로 ‘미워하게 될 것’ 같았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면 삶이 얼마나 지옥 같아지는지,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미움이 마음에 뿌리내리면
결국 상처받는 건 나 자신이라는 것도.


그래서 매일 밤,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며 조용히 기도했다.


‘하느님, 제가 어머님을 미워하지 않게 해 주세요.’


그 기도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무너져가는 나를 붙잡기 위한 마지막 버팀목 같은 것이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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