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는 며느리
결혼식은 화려했다.
단일 예식으로 진행되는 예식장,
천 명이 넘는 하객,
길게 늘어선 화환,
그리고 다이아가 박힌 티아라.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물었다.
"시댁에서 반대하지 않았어? 경제적 차이가 나는데."
그런 사람들의 눈에는, 나는 아마도 ‘신데렐라’처럼 보였을 것이다.
다들 내가 시댁의 지위만큼 넉넉한 삶을 살게 되리라 짐작했겠지.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다.
화려한 결혼식 뒤, 우리가 살 집은 너무 좁고 낡았으며, 가난했다.
남들의 눈에 맞춰 꾸며진 눈부신 예식과 티아라는 한낮의 꿈처럼 찰라일 뿐이었다.
상견례에서 날짜가 정해지자, 결혼은 멈출 수 없는 기차처럼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결혼식장은 하객이 많은 남자친구 쪽 지역으로 정해졌고, 시간도 그 집안에서 원하는 대로 맞춰졌다.
그때 나는 결혼에 대해 제대로 몰랐다.
그래서 어른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지방에 계신 부모님을 대신해 예식 준비 대부분은 시어머님과 함께 진행됐다.
시어머님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나는 자연스럽게 시어머님의 의견에 따랐다.
신혼집은 시댁에서 전세를 해주겠다고 했다.
돈이 없던 우리에게 그것은 큰 도움이었다.
그래서 욕심을 부리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 살아갈 집이니 한 번쯤은 직접 보고 결정할 수 있겠지, 정도로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마음에 드는 집이 두 채 있어. 역과 가까운 오래된 17평 아파트,
조금 멀지만 깨끗한 24평 아파트.
주말에 같이 가서 네가 결정하면 돼.”
집을 보러 갈 생각에 나는 설레었다.
하지만 다음 날, 시어머님에게 또 전화가 왔다.
“17평 아파트를 다른 신혼부부가 계약하려 해서 우리가 먼저 계약했어.
이미 계약금 넣었으니까 그 집으로 들어가면 돼.”
말 그대로 통보였다.
이미 계약된 집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 말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주말이 되어 시어머님과 함께 집을 보러 갔다.
남자친구는 이미 어머님과 함께 봤는지, 현관에서부터 표정이 굳어 있었다.
“나 여기선 못 살아.”
“내 방보다 작은 집에서 어떻게 살아.”
집안에 발을 들이기를 거부하며 신발을 벗을 생각조차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시어머님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단 한 걸음, 문턱을 넘는 순간, 모든 것이 눈앞에 들어왔다.
좌우로 고개만 돌리면 집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크기였다.
집주인이 못 하나 박을 때마다 전화하라고 하자, 시어머님은 뒤돌아서며 말했다.
“이깟 집 1억이면 사겠구먼, 쳇.”
그 말투에는 ‘1억쯤이야’ 하는 여유가 묻어 있었다.
나는 궁금했다.
1억을 그까짓 것이라며 껌값처럼 말하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데,
왜 이런 작은 집을 전셋집으로 해주는 걸까.
하지만 묻지 못했다.
혼전임신으로 결혼하는 내가 감히 따질 수 없는 위치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실 겸 큰방 하나, 작은 주방, 침대 하나로 꽉 차는 작은 방.
큰방에 장롱과 TV를 놓으면 쇼파를 둘 공간조차 없었다.
“쇼파 놓을 공간이… 없을 것 같아요.”
조심스럽게 말하자,
“쇼파 없으면 불편하지. 안 들어가긴~ 다 들어가. 필요한 거 다 사서 넣어라.”
그 말은 ‘우리가 집을 해주니, 필요한 가전과 가구는 부족함 없이 다 채워 넣어라’라는 뜻처럼 들렸다.
그렇게 작은 신혼집은 빈벽 하나 없이 가구로 가득 찼고,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쇼파와 TV 사이의 좁은 바닥뿐이었다.
성인 세 명이 나란히 누우면 꽉 차는 크기였다.
그곳이 우리의 신혼집이었다.
친정 부모님은 딸의 신혼집을 궁금해 하셨다.
내 딸이 어디서 사는지 알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말했다.
“집이 너무 좁아서 초대할 수 없어요.”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이유를 알았다.
신혼집에 잠시 들렀던 언니와 형부가 부모님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집 보시면 마음 너무 아프실 것 같아요. 안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스물여섯, 나는 그 집에서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그 좁디좁은 집에서 단 한 번도 보행기를 타보지 못했다.
그리고 2년 후, 이사를 나올 때 알게 되었다.
그 집은 17평이 아니라 13평이었다.
왜 평수를 다르게 말했냐고 묻자, 시어머님은 피식 웃었다.
“13평이나 17평이나 거기서 거기잖아. 뭘 그래.”
그 말투에는 미안함도, 당황함도 없었다.
마치 ‘니가 알면 뭐 어쩔 건데’라는 당당함과, ‘그게 뭐가 문제냐’는 비웃음만 남아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걸려오는 전화,
하루가 멀다 하고 연락도 없이 찾아오는 일,
주말이면 당연하다는 듯 시댁으로 향해야 했던 일상—
(많을 때는 일주일에 다섯 번, 시어머님을 봐야 했다.)
그리고 ‘많이 아는 내가, 어리고 잘 모르는 너에게 알려주는 건 당연하다’는 말투까지—
모두 나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때 나는 왜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 했을까.
왜 그들의 뜻을 당연하듯 따라야 한다고 믿었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그저 잘 지내고 싶었을 뿐이다.
갈등 없이, 문제없이, 사랑받으며 살고 싶었다.
막연히 내가 노력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스물여섯의 나는,
그 믿음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