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맡기며 작아지는 마음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우리 부모님께 소개하는 자리였다.
게다가 우리는 혼전임신 상태였다.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번 남자친구 부모님을 만났을 때, 내가 얼마나 떨었고 얼마나 혼났는지
그 감정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래서 오늘은 남자친구가 얼마나 떨릴지 알기에 나는 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식당은 우리 집에서 조금 떨어진 한정식집.
동네에서 상견례 장소로 많이 쓰인다는 곳이었다.
좌식 테이블이 놓인 방에는 부모님이 이미 도착해 계셨고,
우리는 인사를 드린 뒤 조심스레 마주 앉았다.
‘지난번 내가 혼났던 것처럼, 남자친구도 우리 부모님께 혼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속에서 숨을 골랐다.
며칠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남자친구의 말이 다시 귓가를 때렸다.
“혼전임신이 잘한 일이야? 아니잖아. 당연히 혼나야지.”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틀렸다.
식사 분위기는 놀라울 만큼 부드럽고 따뜻했다.
부모님은 남자친구에게 가벼운 인적 사항만 물으셨고,
남자친구가 어리지만 대기업에 다닌다고 하니
“안정성 있네.”라며 안도하셨다.
그리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말씀하셨다.
“우리 딸 잘 부탁해요.”
그렇게 우리 부모님과 남자친구의 첫 만남은
따뜻하게 끝이 났다.
하지만 나는 혼란스러웠다.
나는 남자친구 부모님 앞에서
눈물이 나도록 혼이 났는데,
왜 우리 부모님은 잘한 것도 없는 남자친구를
혼내기는커녕 따뜻하게 받아주시는 걸까.
그리고 왜, 왜 굳이 ‘남자친구에게’ 나를 부탁하시는 걸까.
집에 돌아오자 결국 엄마에게 물었다.
“왜 혼내지 않은 거야? 혼전임신… 잘한 일 아니잖아.”
엄마는 담담하게, 그러나 어디에도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혼낸다고 달라질 게 뭐 있니?
둘이 결혼하기로 했고, 결혼하면 가족이 될 텐데, 뭐 하러 혼을 내.
혼내면 그 사람이 평생 이 만남을 속상하게 기억할 거야.
딸 가진 부모 마음은 그렇단다.
이왕 결혼할 거면, 내 딸 잘 봐달라고 말하게 되는 거지.”
나는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왜 ‘잘 봐달라’고 해야 돼? 딸 가진 사람이… 약자인 것처럼?”
엄마는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조용히, 낮게 말했다.
“너도 딸을 가져봐. 그럼 이 마음 알게 될 거야.”
엄마의 말이 내 가슴 깊은 곳으로 꽂혀 박혔다.
‘딸 가진 사람의 마음.’
‘아들 가진 사람의 마음.’
나는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 마음을 이해하는 순간
내 가슴이 더 아플 것 같았다.
누구는 며느리로 들어온다고 혼나고,
누구는 사위가 된다고 환대를 받는다.
임신은 둘이 했는데,
책임과 대우는 왜 이렇게 다르게 받아야하는 것인가.
그저 아들과 딸이라는 성별의 차이일 뿐인데.
딸 가진 사람이 뭐고, 아들 가진 사람이 뭐라고.
딸 가진 부모가 약자가 되는 이 상황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리고 그 약자의 자리에 내 부모님을 앉힌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