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식사: 죄인으로 앉다
임신 테스트기에 선명하게 찍힌 두 줄. 믿기지 않았다.
남자친구와 함께 산부인과에 갔다.
믿기지 않는 마음으로 배를 보고 있는데,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심장소리 들어볼게요.”
그리고 이어진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소리, 드라마에서 보던 바로 그 소리.
그 순간, 나는 ‘임신했구나’ 하고 느꼈다.
나는 결심했다.
아기를 낳아야겠다.
결혼해야 한다.
만약 그가 아기를 지우라고 말한다면, 나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떠날 것이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그를 만나지 않을 것이다.
그날, 남자친구는 결혼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며칠 뒤, 그의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한 호텔 식당의 프라이빗 룸으로 향했다.
남자친구의 부모님께 혼전임신을 알리고자 다시 마련된 식사 자리.
이번엔 큰 호텔식당의 프라이빗한 룸이었다.
태어나 처음 들어가 본 고급스러운 공간은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이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졌다.
임신 사실이 내 어깨를 깊게 짓누르는 듯했다.
직원조차 분위기를 눈치챈 듯, 필요 이상으로 말을 하지 않고 빠르게 식사 준비를 마치고 나갔다.
정적을 깨며 어머님이 입을 열었다.
“너희, 어떻게 할 거야?”
“사고 친 건 너네들이니까, 너희가 알아서 해.”
“돈은 있어? 집은? 어디서 살 거야?”
“대책은 있는 거야? 대책 있으니까 임신한 거 아니야?”
"야~ 너! 어떻게 할 거냐고!"
처음 뵈었을 때 보여주셨던 교양 있는 모습은 사라지고, 언성은 점점 높아졌다.
식사를 하던 남자친구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말했다.
“임신했으니까 책임져야지. 결혼해야 할 거 아니야.”
아버님은 묵묵히, 자신의 아들과 나란히 앉은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식사를 했다.
말을 할수록 답답함이 쌓이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어머님은 자신의 기분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그와 다르게 식사를 할 수 없었다.
반대편에서 느껴지는 매섭고 차가운 시선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고, 그저 “죄송합니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새,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자신의 아들이 아닌 나를 향해 다그치기 시작했다.
임신은 둘이 함께 한 일이었는데, 왜 화살은 온전히 나만 향하는 걸까.
내 고개는 점점 숙여지고, 서러움으로 가득 차올랐다.
혼날 걸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서러운 마음이 밀려올 줄은 몰랐다.
결국 참았던 눈물이 ‘뚝’ 하고 떨어졌다.
그 한 방울이 내 모든 감정을 깨웠다.
어깨가 들썩이고, 숨이 가빠왔다.
이대로라면 소리 내어 울 것만 같았다.
직원들이 드나들며 나를 힐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어머님은 그 상황이 못마땅한 듯, 나에게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했다.
남들 눈이 의식되니, 화장실로 가서 진정하라는 뜻이었다.
나는 숨을 고르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나오자, 복도에서 직원들은 속삭이던 소리를 멈췄다.
그들은 아무 일도 못 본 척 다른 곳으로 흩어졌고, 그중 한 분은 나를 화장실로 안내했다.
화장실에 다다르자, 그 직원은 조심스럽게 내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에고… 울지 마요.”
엄마 나이쯤 돼 보이는 그 직원은 내 상황을 눈치챈 듯했다.
나는 젖은 뺨 위에 미소를 억지로 띠며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고 그의 부모님은 먼저 자리를 떠났다.
그제야 숨을 크게 내쉴 수 있었다.
하지만 울컥하는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참고 있던 말이 결국 터져 나왔다.
“나… 죄인 같아.”
남자친구는 부모에게 혼나 짜증 난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지금 혼전임신한 게 잘한 거야? 잘못한 거잖아. 당연히 혼나야지!”
마치 ‘너는 죄인이 맞다’고 선언하는 듯 들렸다.
임신은 둘이 함께 한 일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죄인은 나 하나인 듯했다.
나는 그날, 분명히 알았어야 했다.
그들에게 나는 혼전임신이라는 ‘우리 아들이 책임져야 할 문제’였고,
그 문제로 맺어진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들이 선택한 며느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그들이 원하는 며느리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남자친구가 남편이 되더라도, 나의 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