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로 시작해 시험으로 끝난 첫 만남
남자친구로부터, 부모님이 사귀는 사람이 있으면 집으로 식사하러 오라고 들었을 때,
나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얼굴 한 번 비추고, 가볍게 인사만 드리면 되는 자리겠지.
스물다섯, 세상을 아직 깊이 모르는 나였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리자, 환하게 웃는 어머님이 나를 맞아주셨다.
그 순간까지만 해도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복도를 지나 집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낯섦이 스쳤다.
아파트였지만 내부는 고가구로 가득했고, 마치 오래된 대저택 같았다.
좌식 테이블 앞에 앉자, 집 두 채를 합쳐 놓은 듯한 넓은 공간이 한눈에 들어왔다.
첫 만남이라 떨리기도 했지만, ‘그냥 식사 자리인데 뭐 어떻겠어’라는 마음이 아직은 더 컸다.
어머님은 나긋하고 교양 있는 목소리로 와규를 굽으며 내게 물었다.
“와규 먹어본 적 있니? 고기 좋아하니?”
남자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아빠 회사에서 보내준 고기야. 여자친구 온다고 맛있는 거 준비했네.”
가볍게 너스레를 떨며 분위기를 풀려했다.
하지만 아버님의 시선이 나를 천천히 훑기 시작하자, 공기는 무겁게 달라졌다.
가벼운 인적사항을 묻는 질문이 끝나자, 이어서 훨씬 날카롭고 묵직한 질문들이 나를 향해 쏟아졌다.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니?”
“그걸 너는 어떻게 극복했는지 이야기해 볼래?”
순간, 단순한 식사 자리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질문들은 식사 자리의 온도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 날카롭고 묵직했다.
나는 합격을 기다리는 면접생처럼 앉아 있었고, ‘합격’과 ‘불합격’ 사이에 놓인 기분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무거운 걸까?’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그날 만남이 끝난 뒤, 남자친구가 말했다.
“아빠가 넌 참 맑고 순수하대. 잘 만나보라고 하셨어.”
순간, 이게… ‘합격’이라는 뜻일까?
기쁘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묘한 감정이 뒤섞였다.
며칠 뒤, 남자친구의 친구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그날 이야기가 나왔다.
그의 친구들은 “떨리지 않았어?”라며 놀라워했다.
몇몇은 학창 시절, 남자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아버님의 포스에 주눅 들어 힘들었던 경험을 후일담처럼 늘어놓았다.
나는 남자친구네 집안 분위기를 잘 몰랐기에, 그저 순수한 생각으로 말했다.
“왜 떨어야 해요?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하루 세끼 먹는 건 다 똑같잖아요.
제가 다니는 직장 상사도 아닌데요!”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술이 오른 남자친구는 아버지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우리 아빠 어떤 사람인지 알아? 우리 아빠 말이야… 이런 사람이야.”
아버지의 직업, 경력, 학벌, 개인비서, 운전기사까지.
마치 어린아이가 “우리 집 진짜 커! 우리 아빠 차 외제차야!” 하고 자랑하듯,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옆에 앉은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맞장구쳤다.
“너, 애랑 결혼하면 작은 사모님 되는 거야.”
작은 사모님이라니.
그 말은 그만큼 남자친구네 집이 잘 산다는 뜻이겠지.
넓은 집, 교양 있는 말투, 아버지의 화려한 경력, 넘사벽 학벌.
그 모든 것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존경하는 사람이 아빠라면 어떤 기분일까?’
나는 시골의 작은 집에서 자랐다.
평범함보다 조금 더 퍽퍽한 집안, 부모님은 어려운 사정으로 대학을 나오지 못했지만,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를 수는 있는 법이지.
남자친구는 서른, 나는 스물다섯.
우린 아직 젊었고, 이제 막 만나기 시작한 사이였다.
그리고 3개월 뒤, 우리는 혼전임신을 했다.
그것이 그들의 ‘며느리’가 되는 시작이 될 줄, 그때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