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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Aug 29. 2022

파란 눈썹을 한 여자

나의 시어머니

  소제목 보셨죠? 차가운 인상에 센 언니 눈썹 문신을 한 나의 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작은 키에 작은 체구지만 까랑까랑한 목소리와 기세로 아들을 꽉 잡고 살았던 그녀는 병히가 만나는 여자가 있다고 말했을 때 딱 한 가지 질문만 했다.

"여자애 키는 몇이야?"

  평생을 작은 키로 본인의 스몰 사이즈 유전자를 두 아들에게 물려준 것을 한으로 여겼던 그녀는 키 작은 여자는 며느리 감으로 꽝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당시 163cm의 내 키를 병히가 165라고 말하는 바람에 어머니는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결혼 생각이 있으면 데리고 라며, 시어머니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잘못된 정보로 이루어지게 다.

  결혼 전, 푸근하고 따뜻한 인상의 시부모를 그려왔기에 그녀의 첫인상은 실망스러웠다. 세팅으로 한껏 볼륨을 말아 올린 세련된 머리에 고급스러운 소재의 코트로 멋을 낸 병히의 엄마는 인상이 좀 사나웠다. 눈썹 문신 때문에 그리 보였다고. 오래된 눈썹 문신은 옅은 푸른색을 띠고 있었는데 갈매기 날개처럼 한껏 꺾어진 굴곡까지 부리부리한 그녀의 눈을 더욱 무섭게 만들었다. 뭐지. 저분이 시어머니가 된다고? 나 도망가도 될까요? 오줌을 지릴 거 같다고!

  가뜩이나 잔뜩 긴장을 했는데 가까이서 얼굴을 마주하자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내 인상이 별로지?"

알긴 아는구나. 하마터면 고개를 끄덕일뻔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겪어보면 괜찮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얼마나 겪어야 하냐 묻고 싶었지만 고 찬물만 들이켰다.

  결혼 후 5년이 지나서야 첫 만남에 들었던 시어머니의 말처럼 그녀가 괜찮아졌다. 신혼 땐 병히 편만 들고 맛난 반찬으로 치사하게 굴고 쓰레기 선물만 주는 등 내 속을 뒤집어 놓더니 그런 푸대접에도 꿋꿋이 제 밥그릇을 사수하는 내가 가여웠나 아님 포기했나. 서서히 잘해주기 시작했다. 며느리 테스트도 아니고 어이가 없었지만 그녀가 내미는 손길이 싫지 않아 똥개마냥 덥석 잡고 좋아서 배까지 까 보였다.

  시어머니의 새치염색도 해주고 페디케어도 해주고. 세상에 시어머니 발가락을 조물딱 거리며 반짝이는 페디 스티커로 젤 페디를 해주는 며느리가 또 있을까? 새치염색 후 수고했다며 십만 원을 받긴 했지만... 딸이 없는 시어머니에게 아들과는 몰랐던 세심한 딸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잘 보이고 싶었냐고요? 그건 아니랍니다. 늘 받는 대로 되갚는걸 삶의 모토로 삼는 노빠꾸 인생, 시어머니가 먼저 베풀었기에 마음의 문을 열었을 뿐.

  온갖 밑반찬에 김치에 쌀에 과일에 고기까지 초록마을에서만 장을 보는 시어머니는 매주 한가득 먹거리를 주셨다. 그래서 따로 장을 볼 필요가 없었고 끼니도 어머니 음식으로 해결했다. 수박도 결혼 후 내 돈으로 산적이 없었다. 여름철마다 한 통씩 떨어지기가 무섭게 안겨줬고, 매주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발레를 배우는 원이에겐 신상 원피스를 턱턱 사줬다. 3주 동안 내내 사주기에 그만 사주라고 말릴 정도였다. 시어머니는 생일이 되면 현금 백만 원을 카카오페이로 보냈다. 부연 설명도 짧았다.

"지속이 생축"

겪을수록 시어머니가 좋았다. 병히에게 우리 서로 부모를 바꾸자고 했더니 빵 터지며 자기가 손해라고 안된다며 거절했다. 기분이 좀 나빴지만 웃겼다.

 훗날 시어머니가 노쇠하여 스스로 거동이 불편하게 된다면 우리 집 방한칸을 내어드리겠다고. 눈눈이이는 복수 한정이 아닌 은혜에도 해당됐다.

  이젠 시어머니의 파란 갈매기 눈썹 문신이 무섭지 않다. 자세히 오래도록 지켜봤더니 그건 갈매기가 아닌 평화의 상징, 파란 비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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