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목 보셨죠? 차가운 인상에 센 언니 눈썹 문신을 한 나의 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작은 키에 작은 체구지만 까랑까랑한 목소리와 기세로 아들을 꽉 잡고 살았던 그녀는 병히가 만나는 여자가 있다고 말했을 때 딱 한 가지 질문만 했다.
"여자애 키는 몇이야?"
평생을 작은 키로 본인의 스몰 사이즈 유전자를 두 아들에게 물려준 것을 한으로 여겼던 그녀는 키 작은 여자는 며느리 감으로 꽝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당시 163cm의 내 키를 병히가 165라고 말하는 바람에 어머니는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결혼 생각이 있으면 데리고 오라며, 시어머니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잘못된 정보로 이루어지게 됐다.
결혼 전, 푸근하고 따뜻한 인상의 시부모를 그려왔기에 그녀의 첫인상은 실망스러웠다. 세팅으로 한껏 볼륨을 말아 올린 세련된 머리에 고급스러운 소재의 코트로 멋을 낸 병히의 엄마는 인상이 좀 사나웠다. 눈썹 문신 때문에 그리 보였다고. 오래된 눈썹 문신은 옅은 푸른색을 띠고 있었는데 갈매기 날개처럼 한껏 꺾어진 굴곡까지 부리부리한 그녀의 눈을 더욱 무섭게 만들었다. 뭐지. 저분이 시어머니가 된다고? 나 도망가도 될까요? 오줌을 지릴 거 같다고!
가뜩이나 잔뜩 긴장을 했는데 가까이서 얼굴을 마주하자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내 인상이 별로지?"
알긴 아는구나. 하마터면 고개를 끄덕일뻔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겪어보면 괜찮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얼마나 겪어야 하냐 묻고 싶었지만 꾹 참고 찬물만 들이켰다.
결혼 후 5년이 지나서야 첫 만남에 들었던 시어머니의 말처럼 그녀가 괜찮아졌다. 신혼 땐 병히 편만 들고 맛난 반찬으로 치사하게 굴고 쓰레기 선물만 주는 등 내 속을 뒤집어 놓더니 그런 푸대접에도 꿋꿋이 제 밥그릇을 사수하는 내가 가여웠나 아님 포기했나. 서서히 잘해주기 시작했다. 며느리 테스트도 아니고 어이가 없었지만 그녀가 내미는 손길이 싫지 않아 똥개마냥 덥석 잡고 좋아서 배까지 까 보였다.
시어머니의 새치염색도 해주고 페디케어도 해주고. 세상에 시어머니 발가락을 조물딱 거리며 반짝이는 페디 스티커로 젤 페디를 해주는 며느리가 또 있을까? 새치염색 후 수고했다며 십만 원을 받긴 했지만... 딸이 없는 시어머니에게 아들과는 몰랐던 세심한 딸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잘 보이고 싶었냐고요? 그건 아니랍니다. 늘 받는 대로 되갚는걸 삶의 모토로 삼는 노빠꾸 인생, 시어머니가 먼저 베풀었기에 마음의 문을 열었을 뿐.
온갖 밑반찬에 김치에 쌀에 과일에 고기까지 초록마을에서만 장을 보는 시어머니는 매주 한가득 먹거리를 주셨다. 그래서 따로 장을 볼 필요가 없었고 끼니도 어머니 음식으로 해결했다. 수박도 결혼 후 내 돈으로 산적이 없었다. 여름철마다 한 통씩 떨어지기가 무섭게 안겨줬고, 매주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발레를 배우는 원이에겐 신상 원피스를 턱턱 사줬다. 3주 동안 내내 사주기에 그만 사주라고 말릴 정도였다. 시어머니는 내 생일이 되면 현금 백만 원을 카카오페이로 보냈다. 부연 설명도 짧았다.
"지속이 생축"
겪을수록 시어머니가 좋았다. 병히에게 우리 서로 부모를 바꾸자고 했더니 빵 터지며 자기가 손해라고 안된다며 거절했다. 기분이 좀 나빴지만 웃겼다.
훗날 시어머니가 노쇠하여 스스로 거동이 불편하게 된다면 우리 집 방한칸을 내어드리겠다고. 눈눈이이는 복수 한정이 아닌 은혜에도 해당됐다.
이젠 시어머니의 파란 갈매기 눈썹 문신이 무섭지 않다. 자세히 오래도록 지켜봤더니 그건 갈매기가 아닌 평화의 상징, 새파란 비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