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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Sep 14. 2022

누렁이의 비애

미백이 시급합니다

  나의 콤플렉스이자 치부를 밝히려 한다. 이 주제는 되도록 피하고 싶었는데 딱히 이것 말곤 주제가 떠오르지 않아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어차피  존경하는 구독자 분들은 애 진작 내 삶의 치부를 다 보신 분들이 아니던가. 이렇게 거창하게 시작하는 이유는.... 바로, 읽어보시죠.

  학원 강사 시절,  우리 반 9살 성준이가 내게 물었다.

"선생님 담배 피우죠?"

난 왜 "피워요?"가 아닌 확신의 "피우죠?"인지 의아했지만 워낙 엉뚱한 아이라 비흡연자라고 말해줬다. 그로부터 며칠 뒤 성준이는 씩 웃으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별명이 뭔 줄 알아요? 누렁이예요."

시골 개 누렁이가 내 별명이라니. 미친개보단 낫다고 생각해 반기며 이유를 물었다.

"이빨이 누래서 누렁이! 크크크"

웃는 성준이 앞에서 당황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웃기기도 하고 수치스럽기도 하고 부끄러운 감정이었는데 억지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참 재밌는 별명이라고 말하자 눈밑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성준이의 솔직한 팩트 폭행으로 의문이었던 주변인들의 행동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로라쌤은 내 생일날 미백 치약을 선물해줬다. 웬 치약?! 그녀는 활짝 웃으며 쌤도 신경 쓰일 거 같아서 선물한다며 손에 쥐어줬는데 날 멕이는 건가 싶었다가 워낙 밝고 성격 좋은 사람이라 저의는 없을 거라 생각하며 선물을 감사히 받았다. 열심히 선물 받은 치약을 썼지만 본 투 비 누렁이에겐 소용이 없었다. 백구가 될 수 없는 누렁이의 비애랄까. 그 후 로라쌤은 내가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는 걸 보면 치아 착색에 커피가 최악이라며 다 마시고 꼭 입을 물로 헹구라고 조언까지 해줬다.

  난 내 누런 이가 아무렇지 않은데 왜들 난리지? 내가 심한가? 속으로 묘한 불쾌함을 느꼈지만 그러던가 말던가 난 꿋꿋이 커피, 카레, 김치를 즐겨먹었다. 난 로라쌤에게 내 피부가 유독 하얗기에 이가 더 누래 보이는 거라고 당당하게 말했지만 그 후 사람들 앞에서 치아를 보이며 활짝 웃을 수 없었다. 입술로 치아를 감싸거나 손으로 입을 가리거나 입을 벌리지 않은 채 입꼬리만 올리며 웃다 보니 웃는 얼굴에 늘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병히와의 결혼식을 앞두고 치아미백을 알아봤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가진 돈을 탈탈 털어하는 결혼이라 미백에 쓸 여윳돈이 없어 포기하고 식 내내 입은 벌리지 않은 채 미소만 짓느라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병히에게 내 치아가 너무 누렇지 않냐 물으면 그는 나도 누래하며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내가 누렁이란 사실을 망각한 채 신나게 커피를 마시며 잘 지내왔다. 그러다 날벼락을 맞았으니 바로 우리 원이의 돌스냅!

  원이를 안은 병히 옆에서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환하게 웃었는데 나온 사진을 보고 이불 킥을 했다. 백구를 안은 두 마리의 누렁이가 눈앞에 있었다. 치아가 누랬는데 병히까지 누래서 보기가 흉했다. 새하얀 원이의 앞니에 대비가 되어 더욱 심해 보였다. 병히도 사진을 보곤 충격을 받았는지 같이 손잡고 미백을 하러 가자고 했는데 유야무야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또다시 망각의 시간을 맞이했고 다섯 살이 된 우리 딸 원이는 요즘 내게 이런 잔소리를 하곤 한다.

"엄마 치카 안 했어? 이빨이 누래. 치카해 빨리!"

(했어. 했다고. 내가 진짜 올해는 치아 미백한다. 비싸도 한다. 잇몸이 녹는 부작용이 있대도 한다. 하고야 만다!! 나 더는 누렁이로 안 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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