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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린 Feb 08. 2024

ep24. 남이 차려준 밥

어머님, 밥 좀 해주세요.

대학시절 집 가는 방향이 같아서 종종 등하교를 같이하던 송도오빠가 있었다.

송도오빠의 어머니는 늘 아들의 아침밥을 손수 차려주시는 부지런한 어머니셨고,

때때로 늦어서 그냥 나가야 할 땐 가는 길에 먹으라고 삶은 계란이나 사과, 토스트 따위를 챙겨주시곤 했다.

그리고 나는 종종 오빠의 옆자리에 앉아 그것을 모조리 빼앗아 먹었다.

얼마나 꿀맛이던지!

(어머니 죄송해요. 아들 아침 제가 다 먹었어요.)


오빠가 너무 부러웠다. 매일 아침을 싸주는 엄마라니...!

그러던 어느 날엔 나도 그 밥이 먹고 싶어, 오빠네 집에 시집가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며느리가 되면 밥을 얻어먹기는커녕 시어머니께 차려드려야 한다는 말에 금세 포기했다.

어째서! 며느리는! 시어머니께! 밥을 얻어먹을 수 없는 것인가!

 

그런데 얼마 전엔 이런 얘길 들었다. 장남이 말하길,


“저희 남동생이 결혼을 해서 부모님 댁하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어요. 가까워서 자주 왕래하고 지내요.특히 제수씨가 틈만 나면 부모님 댁에 밥 먹으러 자주 오더라고요."


“남편 없이요?”


“네. 혼자서요. 어머님 점심 차려주세요~ 하고 온대요. 그래서 어머니가 집안 청소도 더 자주 하고, 언제 올지 몰라서 편한 옷차림으로 있지도 못한다고 불편해하시더라고요. 하하."


“진심으로 불편하시대요?"


“아뇨, 말만 그렇고 좋아하시죠. 예뻐하세요.”


마침 그 자리엔 누군가의 시어머니도 함께 있었기에 내가 또 물었다.


"어머님은 어떠세요? 시어머니 입장에서 맨날 밥 먹으러 오는 며느리.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야 너무 좋지~ 며느리가 밥 먹으러 오면 얼마나 이뻐"


“맨날 맨날 가도요?"


“응. 난 좋은데~?”


뭐야. 밥 얻어먹는 며느리 싫어한다더니.

사실 알고 보니 다들 좋아하는 거였어?! (물론 아님. 사람마다 집집마다 다름.)

생각보다 긍정적인 주변 반응에 희망이 생겼다.


"아싸, 그럼 나도 맨날 시댁에 밥 먹으러 가야겠다."

(죄송합니다. 철딱서니 없는 예비며느리입니다.)


아마 우리 엄마가 들으면 등짝 스매쉬를 날리셨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가 들었다면 혀를 끌끌 차며 네가 차려드려야지 얻어먹을 생각만 하고 있냐고 뭐라 했겠지.

하지만 알게 뭐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남이 차려주는 밥인 것을.

게다가 저희 시어머니, 음식 솜씨도 끝내주신다구요!


시어머니는 요리 솜씨가 정말 좋으시다.

자취하던 남자친구의 냉장고는 항상 어머님이 싸주신 반찬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제 버릇 남 못준다고 나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남자친구의 집에 놀러 가 그 반찬을 종종 뺏어먹었는데, 늘 맛있어서 감격하곤 했다.

(어머님 죄송해요. 아들 반찬 제가 많이 먹었어요.)


안 그래도 시댁이 올해 가을쯤 신혼집 5분 거리로 이사를 오신다.

어쩌면 같은 아파트 단지가 될 수도 있다.

말하면 남들은 불편하겠다며 "시댁은 일단 멀어야 하거늘.." 하고 말하지만 난 오히려 좋아! 다.

왜냐면 어머님이 반찬 싸주신다고 했거든.

(인생이란 무릇 일장일단,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갖고 있는데 단지 '시댁'이라는 이유만으로 단점이 부각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사실은 어마어마한 장점이 더 많을 수도 있고.)


이사 오시면 맨날 밥 먹으러 놀러 가야지. 헤헤.

아마 우리 어머님이라면 내가 밥 먹으러 오는 거 좋아해 주시지 않을까...? (아님 말구)


아까는 설 전날 언제 가는 게 좋을지 어머님과 통화하면서 가벼운 실랑이가 있었다.

일손 도우러 전날 가겠다 말씀드렸더니 할 일 없으니 오지 말고 집에서 그냥 편히 쉬라시는 어머님.

그래도 그럴 수는 없다며- 한사코 거절하여 가겠다 했더니 그럼 너들끼리 늦잠 자고 점심 먹고 천천히 오라신다.

그리고 이때다 싶어 시어머니께 밥 차려달라는 며느리. (는 바로 나.)


“아녜요, 어머님~ 저희 일찍 가서 밥 먹을래요~“


점심 차려달라는 내 말에 어머님은 허허 웃으시며 알겠다고 하셨다. 크크. 밥 얻어먹는 며느리 성-공!


+

우리가 신혼집에 입주한 후로는 내가 직접 요리를 하니 어머님댁에 반찬을 가지러 갈 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반찬 가지러 오라는 달가운 부름.

나는 신나게 반찬통을 챙기며 짝꿍에게 말했다.


“내가 요리해 주긴 하는데 맛없다고 하고, 엄마 반찬이 최고라고 하고 많이 많이 얻어와 ^^ 알았지?”


정말로 어머님이 최고입니다. 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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