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린 Feb 12. 2024

ep25. 나만 없어, 명품백

남들은 서너 개씩 갖고 있다는 명품백, 나는 하나도 없다.


프로포즈를 받을 때도, 예단예물을 준비할 때도, 어쩌니 저쩌니 해도 명품백을 받지 못했다.

당연히 꼭 받아야만 하는 건 아니다. '내돈내산'하면 된다.

그러나 내 돈으로 산 적도 물론 없거니와

언젠가 데이트하던 중 백화점에 갔을 때 하나 사 줄 테니 골라보라던 짝꿍의 권유에도 여전히 없다.

하나쯤은 갖고 있으면 좋다고-

이때 (결혼할 때) 아니면 사기 힘들다고-

살 수 있을 때 사라는 주변의 충고(?)에도 아직까지 없다.

아마 짐작컨대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명품백, 그것이 대체 뭐기에.

필요도 없는걸 나더러 자꾸 사라고 하는 걸까.


물론 분명히 말하지만 난 명품을 존중한다.

가방 하나 값이 수천만 원 호가하는 것을 백번 천 번 이해한다.

그것은 사치품이 아니라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든 진정한 명품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평가절하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명품 하나 없다고 큰 일 나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큰 일 나는 건 구매 후 재정일 수도)

없으면 무시당한다고..? 그럼 그냥 무시하라지 뭐.

명품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람도 어차피 딱 그 정도의 인간인 거다.

게다가 나는 명품백이 어울릴만한 헤메코(헤어 메이크업 코디)를 하고 다니지도 않고.

무엇보다 돈이 너무 아깝다.

차라리 그 돈으로 내게 필요한 다른 것을 사겠어.라는 마인드랄까.


그래서인지 명품가방뿐 아니라 다른 종류의 어떤 명품도 없다.

구두, 벨트, 지갑, 액세서리, 스카프, 향수 등..

생일이면 카톡으로 선물 받는다는 그 흔한 립스틱조차도.

이런 나를 보며 '요즘 여자 같지 않게 사치하지 않는 소박한 모습이 보기 좋다'던 남자도 있었다.

말은 안 했지만 어쩌면 짝꿍도 나의 이런 모습에 결혼을 결심했는지도 모를 일이지.


하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 부분에는 분명한 오해가 있는 것이, 나라고 해서 명품백이 싫어서 하나도 없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안 갖고 싶어서라기보다는 필요가 없어서 구매하지 않은 것뿐.

어쩌면 돈이 문제겠지.

못 살 정도는 아니지만 굳이 사야 할까? 싶은 정도의 경제력.

만약 하늘에서 공짜로 명품백이 떨어진다면 그걸 마다할 여자가 있을까?

이런 나라도 이벤트 당첨으로 샤넬백을 준다면 '난 그런 거 안 들고 다니니까 안 받을게요.'하진 않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왜 사준다는데도 안 받느냐고?

그야 그의 돈이 곧 나의 돈이고, 그것이 우리의 돈이기 때문이다.


이건 엊그제의 일이다.

종종 모이는 부부모임에서 해외여행 나가면 면세로 싸게 명품백을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이 기회에 저렴하게 하나씩 장만들 하자며 곧 출국 예정이니 대신 사다 주겠다는 제안도 나왔다.

브랜드는 C사였다.


"해외여행 가면 면세로 명품백 싸게 살 수 있어. 이번에 나 하나 사려구"

"어머 진짜요?"

"응. 필요하면 하나 사다 줄까? 내 거 사는 김에 사다 줄게."


그 말을 들은 짝꿍은 내 옆자리에 앉아 C사 가방을 검색했고, 쭈욱 내리다 보니 내 맘에 드는 캔버스 백도 있었다.

그러나 C사의 평범해 보이는 캔버스 백의 가격은 평범하지 않은 190만 원 정도.

나 혼자 속으로 '헉.. 비싸다.. 19만 원이면 사겠다..' 생각하던 중에 짝꿍 입에서 나온 말.


"이게 190만 원이네. 이거 얼마에 살 수 있는데?"

"아마 50만 원 정도는 할인받을 수 있을걸?"

"자기야(나를 부르는 말) 이거 140만 원이라는데 하나 할래?"


이번에도 사겠느냐 먼저 제안하는 짝꿍.

그리고 나는 1초의 고민도 없이 바로 말했다.


"아니? 뭐 하러 저런 걸 140만 원이나 주고 사."


그런데 아뿔싸, 순식간에 차가운 정적이 찾아왔다.


"...."


아무래도 내가 말실수를 했나 보다.

몇 초 뒤 남자들은 그래, 그렇지라며 이 말이 맞지 하며 환호했고

여자들은 그래, 난 명품에 환장한 여자야라며 그래도 사야겠다며 살 거라고 떵떵거렸다.

생각지 못한 반응에 아무 생각이 없이 먹고 있던 떡이 목구멍에 콱 막히며 캘록캘록 기침을 토했다.

너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라, 수습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아니 아니, 내가 본건 그 돈 주고 사기엔 아까워서 그런 거고. 예쁜 가방이면 다르지."


수습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본의 아니게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여자들을 '140만 원이나 주고 그런 걸 사는 여자'로 만들어버렸지만 절대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난 결코 명품백 사는 여자가 사치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명품백 하나 없다고 해서 사치스럽지 않은가? 하면 그건 또 다른 문제고.


가방에 돈을 쓰는 게 아까운 거지.

튼튼하고 좋은 차, 예쁘고 깔끔한 집. 나도 갖고 싶다.

내 사치는 거기에 있다.

다만 사치를 부리기엔 금액이 너무 커 사치를 못 부리고 있을 뿐... 흑흑.

가방은 몇 백이면 사지만 차와 집은 몇 천, 몇 억이 드니까.

해서 짝꿍이 가방 사준다 해도 그거 살 바에야 차라리 돈 모아서 집을 사야지.라는 기저로 얘기한 것인데.. 쪕..


여담이지만 그 자리에 있던 한 남편은 돈을 차곡차곡 모아 아내에게 근사한 명품백을 사주고 싶어 하며, 난 그것이 꽤나 부럽다. (그 마음이)

다른 한 부부도 남편에게 명품백, 명품반지 받았으며 그것도 꽤나 부럽다. (역시나 그 마음이)

그렇지만 우리 부부가 집을 사면 그땐 아무도 부럽지가 않을 것 같단 말이지.


그래서,

난 오늘도 명품백이 없다.


+

한 가지 웃긴 사실은, ‘나만’ 없다는 점이다.


결혼하면 명품얘기도 빠지지 않고 자주 등장하는 단골주제다.

여자들에게서 "결혼준비하면서 명품 주고받으셨나요?"라는 질문도 많이 받아봤고.

그럴때마다 나는 "전 명품백 하나도 없어요."라고 답한다.


그래. 남들과 비교할 필요는 없는 거다.

각자 사정대로 사는거지.

근데 나는 ‘저만’ 없고, ‘나만’ 없다. 이어 말한다.


"제 남자친구(짝꿍)는 디올 사고 싶대요. 물론 자기 거."


짝꿍은 명품백 들고 다닌다. (명품 운동화 신고, 지갑 들고, 차도 좋은거 탄다.)

췟 나만 없어, 명품백.

작가의 이전글 ep24. 남이 차려준 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