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7주 1일 차
오늘 아침, 눈을 뜨자 참기 힘든 요의가 느껴졌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난 후 눈에 띄게 달라진 변화가 있다면 잠을 자다가 중간에 꼭 한 번씩은 일어나 화장실에 간다는 것이다. 빈뇨는 임신의 가장 흔한 증상 중 하나.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4시 잠에서 깨어 화장실로 향했다. 평소와 같은 하루의 시작. 그러나 오늘은 어쩐지 좀 다른 낌새가 느껴졌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말이 있지. 아니나 다를까 소변 후 휴지를 보니 묽은 피 비침이 있었다. 아, 이런. 출혈이라니...
출혈은 유산의 대표적인 징후다. 나는 오늘로 임신 7주 1일 차, 임신의 기쁨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행여나 유산이 되진 않을까 걱정부터 하게 된다는 임신 초기다. 임신 중 유산의 대부분은 임신 초기 12주 이내에 일어난다. 게다가 여성 4명 중 1명은 유산을 겪을 정도로 흔한 일이고. (슬픈 예감이 나를 비껴가란 법은 없으니까.) 물론 출혈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유산되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해서 좋은 징후라고 보기도 어렵다. 이미 이런 정보들을 임신사실을 알게 됨과 동시에 공부했던 나는 오늘 아침 내게 나타난 시그널을 보며 문득 두려운 생각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잠을 더 청했다. 일단 자고 일어나서 또 보자. 소량의 출혈은 괜찮으니까. 이 정도면 출혈이라고 보기도 애매할 정도의 미량인 걸. 애써 나를 달래며 잠들었다. 다시 일어난 시각은 오전 9시. 또 한 번의 요의가 느껴져 화장실로 향했고, 안타깝게도 안심이 아니라 근심을 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그새 새벽보다 출혈량이 더 늘었다. 아, 하지만 괜찮다. 임신초기 소량의 출혈은 꽤 많은 여성들이 겪는 흔한 증상이고, 단지 착상혈일 수도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진 않아도 된다. 아, 아니야. 그렇지만 난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작은 출혈조차 없었는 걸. 게다가 착상이라기엔 시기가 너무 늦어.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아. 아무래도 오늘은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 급하게 산부인과에 전화를 걸었다.
일요일 오전이라 병원진료는 점심시간에 마감이었다. 서둘러 세수를 하고 옷을 챙겨 입었다. 그러고 난 뒤 아직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남편은 곧 출근 시간이라 할 수 없이 병원은 나 혼자 가야 한다. 상황이 좋지 않음을 설명하고 병원에 다녀오겠다 말했다. 절대 산부인과 진료는 나 혼자 보러 가지 않으리라 다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이런 상황을 마주해야 하다니. 께름칙한 기분이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택시를 불러 빠르게 병원으로 이동했다.
내가 산부인과 진료를 꼭 남편과 함께 가기로 마음먹은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남편도 눈으로 보고 확인하며 책임감과 관심을 갖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고, 나머지 하나는 혹시나 있을지 모를 유산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나 혼자 진료를 보러 간 날, 만약에라도 예기치 못하게 유산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것은 나 혼자 감당하기 버거울 것이 분명했다. 아주 잠깐 상상만 했을 뿐인데도 눈앞이 캄캄해지고 막막해지는 것이 도저히 혼자서는 담담히 집에 돌아오기가 힘들 것 같았다. 그렇기에 꼭 둘이 함께 가서 어떤 순간도 이겨내기를 원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늘 그렇듯, 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도 역시 그런 거겠지. 잠시나마 혼자 가지 말고 어차피 3일 뒤에 있을 정기검진까지 기다렸다가 남편과 함께 갈까 싶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혼자 간다고 뭐 크게 달라지겠어. 이미 5주 차에 아기집을 확인한 이후 진료를 보지 않은지 2주가 넘었다. 이 시기에 많은 엄마들이 1주에 한 번씩, 혹은 주에도 몇 번씩 병원에 방문해 난황과 심장소리를 확인하는 데 비해 나는 꾹꾹 참고 지금껏 버텼기 때문에 오늘이라도 가서 아기가 잘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예상대로라면 이미 심장이 건강하게 뛰고 있을 테지.
그리고 도착한 병원, 대기자가 없어 빠르게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원래 진료를 보시던 선생님은 오늘 안 계셔서 다른 선생님께 진료를 받았다. 이때까지는 별 긴장을 하지 않고 속옷을 탈의 한 채 검진 의자에 앉았다. 사실은 기대했다. 예쁘고 동그란 난황과 작고 반짝이는 심장을 가진 아이의 모습. 그리고 힘차게 뛰는 심장소리까지. 당연히 볼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동안의 나는 출혈이나 복통 한 번 없이 매우 건강했고, 또 멀쩡했으니까. 그 흔한 입덧조차 없어 영양제와 식사도 잘 챙겨 먹었고, 운동도 열심히 할 만큼 컨디션마저 좋았으니까. 아마 나처럼 건강한 엄마는 없을 거라며 자부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세상 일은 역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초음파 기계가 질 안으로 들어서자, 눈앞에 보이는 화면은 예상과 정 반대되는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굳이 선생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지 않아도 뭔가가 잘못됐다는 걸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아직도 자그마한 아기집. 그리고 아무리 확대해 보아도 새까맣기만 할 뿐, 아기집 안에는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난황도, 아기도. 그 무엇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방금 내가 본모습은 2주 전 보았던 초음파 사진과 거의 똑같았다. 처음 확인했던 아기집의 크기는 0.55cm, 2주가 지난 현재 아기집의 크기는 1.05cm. 다만 0.5cm 정도 크기가 조금 커졌을 뿐 어느 것도 달라지지 않은 초음파 사진. 안 좋은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아직 유산이라 확정 지을 순 없다고 하셨다. 착상이 늦어졌을 수도 있기 때문에. 오늘 혈액 검사를 통해 임신 호르몬 수치를 확인하고, 3일 뒤 예정되어 있는 정기검진 때 한 번 더 혈액 검사를 해서 수치를 비교해 보자고 하셨다. 정상이라면 호르몬 수치가 상승할 것이고, 만약 반대로 수치가 하락한다면 그땐 유산이라고.
유산이 확정 지어진 것은 아니지만 불안함은 이미 나를 좀먹기 시작했다. 병원에선 착상에 도움 주는 주사를 놨고, 유산 방지 질정제도 처방받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이미 내게 일어난 일은 좋지 않은 징후임이 분명했고, 자그마한 희망을 걸어 기대를 하는 것보단 지금이라도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는 쪽이 더 나을 것 같은데... 그리고 나는 이제 이 모든 사실을 남편에게 전달해야 한다. 아, 끔찍하게도 하기 싫었던 일이 결국 일어나고야 말았다.
찾아보니 내 증상은 1. 고사난자 (텅 빈 아기집) 유산의 경우, 혹은 2. 단순히 착상이 늦어진 경우 둘 중 하나로 좁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쪽도 예후가 좋지 않음은 거의 확실했다. 고사난자일 경우 반드시 유산이고, 착상이 늦어진 경우라해도 후에 아기가 빠른 시일내 건강하게 자라준다면 다행이지만 여전히 성장이 더딜 경우 임신 종결을 해야만 한다. 임신 주수를 계산해보면 착상이 되고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에 비해 아기집은 아직도 한참이나 작다. 그러니 결국은 유산을 염두에 둘 수 밖에.
병원 진료를 모두 마치고 나올 때까지 나는 꽤 의연했다. 괜찮을 거야. 어차피 알고 있었잖아, 유산 가능성은 항상 있다는 거. 나만 겪는 일 아니고 여성 1/4이나 겪는 흔한 일인 걸. 그러나 조금 더 걷자 참을 수 없는 눈물이 밀려왔다. 아, 어떡하지. 유산이면 어떡해야 하지. 아기를 어떻게 보내줘야 하지. 축하해 준 주변사람들에겐 뭐라고 말해야 하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건강했는데 유산이라니... 결국 화장실에 몰래 숨어들어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리고야 말았다. 쏟아지는 눈물을 휴지로 틀어막고 다시 나를 진정시켰다. 괜찮아, 유산이면 뭐 어때. 아기는 다시 찾아올 거야. 그래, 다시 올 거야. 꼭.
그렇게 나를 달래며 마음을 추스르고 나왔다. 그러나 화장실을 나와 몇 걸음 걷지 않아 야속하게도 눈앞에 한 임산부가 보였고, 너무나 멀쩡해 보이는, 곧 아이를 만날 날을 기다리는 그녀를 보며 곧바로 나는 왜 그러지 못하는지 스스로가 미워졌다. 또 눈물은 났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차분히 이 시간이 지나기길 기다리는 수밖에. 울음을 참는 것만이 슬픔을 이겨내는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니까. 때로는 지금처럼 속이 개운해질 때까지 흘려보내야지 어쩌겠는가.
산책을 하며 바람을 쐬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비록 그 와중에도 몇 번은 울컥했지만. 그러고 보니 아까는 우느라 정신이 없어 남편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아마 걱정하고 있겠지... 남편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더 미룰 수는 없으니 다시 전화를 걸었다. 진료는 끝났고, 할 말은 정해져 있고, 내가 의지할 곳 역시 남편뿐이니 마음 편하게 이야기하자. 그리고 신호음이 얼마가지 않아 이내 들려오는 남편의 목소리. 걱정이 잔뜩 묻어나는 말. "병원에선 뭐래?" 각오했지만 순간 그의 질문에 입이 떨어지지 않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어지는 남편의 물음. "괜찮아?"
괜찮냐는 말에 나는 또 울음이 나올까 싶어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응 혹은 아니라는 말조차도. 그리고 이어진 정적의 시간 속에서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남편 역시 많은 것이 느껴졌는지 그 뒤로는 아무 말 않고 나를 기다려주었다. "..." 그렇게 한참의 정적이 흘렀다. 나는 겨우겨우 울음을 참고 있었다. 그리고 정적의 끝에서 남편은 내게 그 어떤 질문을 던지는 대신 "괜찮아."라고 말해주었다. 내 딴엔 슬픔을 들키지 않으려 꾹 말을 삼키는 동안 이미 모든 것을 눈치챈 그가 먼저 나를 위로하자, 결국 나는 또 울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입덧도 없고, 가슴 통증도 없고, 변비도 없고, 졸음마저 없어 이 정도로 임신 무증상일 수 있는지 의아했었다. 바보같이 때로는 좋아하기도 했었다. 어쩌면 임신체질인 게 아닐까라며 이렇게라면 애 열 명쯤은 거뜬할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난 축복받은 임산부라며 전생에 덕을 많이 쌓은 게 분명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그 사이에 아기는 한 톨도 자라지 않았다니. 무증상의 이유가 전부 정상 임신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니. 이토록 바보 같은 엄마가 있을 수가.
미리 알아차리지 못한 스스로가 너무나 바보 같고 한심하지만 그 와중에 다행인 일들을 곱씹어 본다. 아직 부모님께는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 여태까지 참고 참은 게 정말 다행이다. 부모님이 아셨다면 임신 소식에 나만큼이나 기뻐하셨겠지만 유산 소식에는 나만큼 슬퍼하지도 못하셨을 테니까. (슬퍼하는 나를 달래느라...) 그러니 이것은 분명 불행 중 다행인 일이고. 또 유산을 겪은 엄마는 많지만 유산 뒤에 예쁜 아가를 만난 엄마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 또한 다행이다. 덕분에 나 또한 다음을 기대할 수 있다. 여전히 불안하겠지만, 언젠가는 또 좋은 날이 오겠지.
물론 아직 내 뱃속에는 경주(태명)가 있다. 작고 작은 나의 경주. 어쩌면 제목을 유산일기라 적었지만 유산이 아닐 수도 있다. 조금 늦었을 뿐 며칠 뒤 건강하게 자라 심장을 반짝이고 모습을 드러내줄지도. 그러면야 고맙고 기특한 일이지만 그러나 또 한 편으로는 아닐 수 있음에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 다짐한다. 엄마, 아빠가 아직 준비가 덜 되어 다음에 찾아온다 해도. 혹은 엄마, 아빠가 포기하고 체념하는 이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성장하고 있다 해도. 어느 쪽이어도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모두 경주가 하는 일이다. 나는 그저 지켜보고, 받아들이는 것뿐.
퇴근 후 집에 돌아온 남편을 보자마자 품에 달려가 안겼다. 그 상태로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그제야 남편 또한 오늘 하루 꾹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속상했을까. 아닌 밤 중에 눈물의 상봉이 이뤄졌다. 그러나 그 순간이 마냥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슬픔을 나눌 상대가 곁에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둘이니까 할 수 있는 일. 우리는 얼른 눈물을 닦아내고 퉁퉁 부은 눈으로 저녁을 차려 먹었다. 밥맛도 없을 것 같았지만 의외로 함께 하는 저녁은 맛있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몇 번은 웃기도 했다. 다행이었다. 그냥 이 모든 게, 우리라서.
이제 꼬박 3일을 기다리면 확실히 유산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게 된다. 괜찮다. 어느 쪽도. 어느 쪽의 결과가 나오더라도 우리는 담담히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 남편도 나도 실낱같은 가능성을 붙잡고 희망에 차 있지는 않기로 했다. 그래봤자 이별을 받아들이기가 더 어려울 테니까. 또한 지금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다섯 번의 유산을 경험한 뒤가 아닌 것도 감사하기로 했다. 단 한 번의 시도로 이뤄낸 첫 임신이고, 그저 잠깐 운이 좋았을 뿐이라 여기기로. 아직 심장 소리를 듣지 못한 것도 오히려 다행이다. 심장소리를 듣고 나면 보내기가 더 힘들다고 하니까. 이렇게 이모저모 불행 중 다행을 찾으며 마음을 놓아본다.
이 글은 이제부터 더 과거를 향해 기록될 것이다. 7주간의 여정, 그 안에 행복했던 순간 그리고 느꼈던 모든 감정들을 꺼내어 기록하려고 한다. 잊고 싶지 않아서. 또 제대로 마주하고 싶어서. 언젠간 글이 거꾸로가 아닌 출산을 향해 똑바로 쓰이는 날도 오기를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