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으로의 여행

겨울, 그리고 여행

by 소담


내면으로의 여행


회사에서 집단상담에 참여하고 있다. 리더들의 굳은 틀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보자는 의도다. 대표가 기획한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내면으로의 여행’이다. 이름이 먼저 마음을 건드렸다. 여행이라니. 겨울의 여행은 대개 바깥으로 향하는 법인데, 이번에는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상담을 이끄는 선생님은 여러 나라에서 상담을 해온 분이다. 낯선 장소를 많이 건넌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단정한 여유가 있었다. 부드러운 질문으로 정확한 곳을 짚었고, 해석은 단호하기보다는 조용히 길을 내주는 방식이었다. 나는 그 질문이 방 안의 공기를 바꾸는 순간을 몇 번 보았다. 누군가 말끝을 흐릴 때, 선생님은 더 묻지 않고 잠깐의 침묵을 놓아두었다. 그 침묵이 이상하게 안전했다.


집단상담의 시간은 생각보다 느리게 흘렀다. 그 느림 덕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순간에 몸이 먼저 긴장하는지, 어떤 말 앞에서 마음이 움츠러드는지를 조금 더 또렷하게 보게 됐다. 동료들의 말이 이전과 같은 속도로 들리지 않았다. 같은 문장인데도 다른 온도로 느껴졌다. 말의 의미보다 말이 나오는 표정과 숨의 길이가 먼저 보이는 날도 있었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유독 불편하고 어려웠다. 종이를 이용해 ‘나무’를 표현해 보라는 작업이 있었는데, 그게 가장 난감했다. 종이는 말이 없고, 내 손은 더 말이 없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한참 망설였다. 그러다 종이를 찢었다. 종이를 찢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 소리가 나 대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찢긴 단면이 나뭇가지가 되고, 돌돌 말린 종이 뭉치는 열매가 됐다. 손을 움직이며 반복하는 동안, 처음의 어색함은 서서히 사라졌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말로는 풀리지 않던 것이 손끝에서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었다. ‘노작’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집단상담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탤런트 한효주가 출연한 ‘로맨틱 어나니머스’라는 드라마에서였다. 시선공포증을 앓는 인물과 접촉 공포증을 가진 인물이, 각자의 공포를 안고 서로를 견디는 장면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때는 ‘상담’이란 무엇인지 막연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장면의 핵심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고쳐 세우는 일이 아니라, 도망치지 않고 같은 자리에 잠시 더 머무는 것. 그 시간이 사람을 바꾸는 것 같았다.


상담에서는 일상에서 참아야 할 말이나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그대로 꺼낼 수 있었다.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느렸던 마음의 속도를 내 속도로 되돌릴 수 있어, 마음이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졌다. 나는 “괜찮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꺼내던 사람인데, 그 말 앞에서 한 번 멈추게 됐다. 괜찮은 척하다가도, 사실은 무엇이 불편한지 더 오래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생겼다.


다음 겨울이 되어야 끝이 나는 장기적인 여행 프로젝트다. 이 여행이 끝나면 여전히 아는 게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함께 걷는 동안만큼은, 내 안의 길이 조금씩 닦일 거라 믿는다.


겨울 날씨는 차갑다. 그래서 더 내면의 온도에 민감해진다. 내 말의 뿌리와 동료들의 표정을 조용히 바라본다. 어쩌면 이건 정말 여행이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은 채, 나는 나에게로 걸어 들어간다.


겨울은 늘 차갑지만, 그 안에서만 더 선명해지는 온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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