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의 봄이야기
차가운 기운이 물러난 자리 위로 어느새 따사로운 봄햇살이 내려앉았다. 사람들이 봄을 느끼기 훨씬 전부터 들판에서는 이미 봄나물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봄나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냉이다. 은은한 향과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입안 가득 봄을 머금게 한다. 알싸한 향으로 입맛을 깨우는 달래와 진하고 쌉싸름한 향을 품은 쑥, 그리고 데쳐 초장에 찍어 먹으면 고급스러운 식감을 내어주는 두릅까지. 아삭하고 상큼한 돌나물 또한 이 계절에 빼놓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봄나물 가운데에서도 내 마음을 온전히 사로잡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유채나물과 봄동이다. 유채는 봄에 가장 먼저 올라오는 채소로, 살짝 쌉쌀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가만히 식욕을 건드린다. 봄동은 겨울과 봄 사이에서 자란 어린 배추로, 일반 배추보다 훨씬 부드럽고 수분이 많아 아삭하면서도 달콤하다.
지난주에는 내가 좋아하는 유채와 봄동으로 오랜만에 주부 흉내를 조금 내보았다. 시험을 준비하는 딸아이의 입맛을 돋우고 싶기도 했고, 제철 나물은 금세 지나가 놓치면 다시 내년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유채, 마늘순, 봄동, 톳두부무침, 콩나물무침, 그리고 소고기 척롤볶음을 더해 비빔밥을 만들었다. 그동안 사서 먹는 반찬으로 끼니를 이어가다가 오랜만에 손맛이 더해지니, 눈치 없이 숟가락이 자꾸만 갔다.
정작 식욕이 필요했던 딸아이는 여전히 소식하는데, 지난주부터 ‘살과 이별’을 다짐했던 내 식욕만 한껏 살아났다.
봄나물은 추억을 품고 있다. 봄나물로 준비한 식사를 하는 동안 딸아이에게 들려준 봄 이야기가 참 많았다. 할머니와 냉이를 캐러 갔던 기억, 할머니가 해주던 마늘순 반찬이 매워 싫다며 투덜거리던 순간들까지 떠올랐다. 막상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 나니, 엄마와의 봄 추억이 이렇게나 많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아침마다 통화를 하다 보면 엄마는 이미 봄 한가운데에 와 있었다. 달래로 간장을 만들어 비빔밥에 넣어 먹었다는 이야기, 냉이 된장국이 얼마나 맛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졌었다. 어릴 적 먹었던 마늘순이 떠오른다고 했더니, 집에서 직접 마늘을 심었었다는 말을 듣고는 조금 놀라기도 했다. 내 기억 속에는 마늘이 자라는 풍경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제철 음식이 유난히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나이 탓일까. 아니면, 봄에게 기꺼이 곁을 내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그날 나는, 봄나물과 함께 오래된 추억을 다시 꺼내 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