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처음 카페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말 그대로 실수 투성이었다.
교사 시절에는 책과 노트만 있으면 되었지, 무언가를 손으로 빠르게 만들어내야 하는 일은 거의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카페라는 공간은 전혀 달랐다. 손님이 주문한 음료를 단 몇 분 만에 만들어 내야 했고, 동시에 눈앞의 상황을 재빨리 구분하고 처리해야 했다.
하루 천여 명이 다녀가다 보니, 그날도 주문이 밀려 들어왔다. 아이스 바닐라라테와 아이스 캐러멜마키야토가 문제였다. 물론 두 음료가 문제였다기 보다, 그 음료를 만들어야 하는 내가 문제였다. 학원에서 연습했을 때는 차근차근 하나씩 만들면 되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순식간에 주문이 쏟아지는 상황 속에서 손이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막상 완성된 음료를 앞에 두고도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이게 바닐라라테였나, 캐러멜마키야토였나…” 머릿속이 하얘졌다. 더구나 바닐라 시럽을 넣었는지, 빼먹었는지도 헷갈려 버렸다.(실제 두 음료는 섞이면 구분이 쉽지 않아서 가끔 향을 맡아보기도 한다)
순간 당황한 내 표정을 본 동료들이 다가와 말했다.
“바닐라라테는 밑에 시럽이 투명하게 보이고요, 캐러멜마키야토는 한꺼번에 섞어서 붓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퍼져요.”
짧은 설명이었지만, 그 말이 내게는 큰 구원처럼 느껴졌다. 덕분에 나는 눈앞의 두 잔을 구분할 수 있었고, 손님 앞에서 당황하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돌이켜보면, 그날 내가 받은 도움은 단순한 기술 전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동료들이 보여준 너그러움과 격려였다. 실수 하나에도 충분히 곁눈질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나를 비웃거나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으며 “처음엔 다 그래요”라고 말해주었다. 그 웃음이 실수로 무너진 나의 마음을 다시 세워주었다.
물론 음료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느 날은 토스트기를 청소하다가 무심코 타이머를 돌려버리는 바람에, 넣어둔 베이글이 새까맣게 타버린 적도 있었다. 기계에서 풍겨 나오는 타는 냄새에 깜짝 놀라 뛰어가 보니, 베이글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까맣게 변해 있었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왜 이런 사소한 것도 제대로 못할까.’ 자책이 밀려왔지만, 동료들은 또다시 나를 다독였다.
“괜찮아요, 새로 만들면 되죠.”
말 한마디로 끝낼 수 있는 작은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말이 내겐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실수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실수로 인해 관계가 흔들리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 곁에는 실수를 함께 웃어 넘겨주는 장애인 동료들이 있었다. 그들은 나의 부족함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그 자리를 함께 메워주었다. 그 덕분에 나의 하루는 좌충우돌 속에서도 따뜻하게 마무리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능숙하게 음료를 만들고, 타이머도 잊지 않고 챙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작은 실수는 가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처럼 크게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내가 경험했던 동료들의 웃음과 다독임 덕분이다. 그 기억이 내 안에 단단한 버팀목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처음의 그 실수들은 내게 꼭 필요한 통과의례였던 것 같다. 실수 속에서 나는 배우고, 성장했고, 무엇보다 ‘함께 있음의 의미’를 깊이 새길 수 있었다. 혼자였다면 버텨내지 못했을 순간도, 동료와 함께였기에 웃으며 지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누군가가 실수를 하면 서둘러 말한다.
“괜찮아, 누구나 실수해.”
그 말속에는 나의 지난날이 담겨 있고, 동시에 내가 받은 따뜻함을 다시 건네고 싶은 마음이 있다.
작은 실수들은 나의 하루를 흔들었지만, 그때마다 장애인 동료들이 함께 지켜주었기에 결국 내 하루는 언제나 따뜻했다. 그리고 그 따뜻함은 오늘의 나를 만드는 가장 든든한 자양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