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품다
토론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다음날의 질문을 예고했다.
“내일은 이런 질문을 해볼 거예요. 자신이 바라는 10년 후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깊이 생각해 보고 답해주면 좋겠어요.”
그 말이 끝나자 카페 안은 잠시 숙연해졌다. 10년이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길고, 아직 닿아보지 못한 낯선 세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다시 둥글게 둘러앉았다. 나는 10년 후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 질문하지 않고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과정이 어땠는지 물었다.
“어제 미리 알려준 질문 기억하죠? 10년 후 자신이 바라는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니 어땠나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한 직원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10년 후의 나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막상 떠올려보니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직원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10년 후라니, 너무 멀게만 느껴져서 상상하는 게 오히려 힘들었어요.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것도 벅차거든요.”
또 한 명은 단순하면서도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처럼 살면 10년 후에도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아서… 그게 두려웠어요.”
대답은 달랐지만, 모두의 말속에는 삶에 대한 저마다의 고민이 묻어 있었다. 누군가는 다짐을, 누군가는 막막함을 내놓았다.
모두의 이야기가 끝난 뒤, 나는 의도적으로 토론을 정리하려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그런데 그 순간, 여기저기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니, 10년 후의 모습에 대해 물어보겠다고 하셨잖아요. 왜 더 안 물어봐 주세요?”
“저도 제 얘기를 하고 싶어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굳이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여러분이 이미 마음속에서 답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내 의도는 분명했다. 말로 표현하는 순간보다, 스스로 곱씹고 마음에 담아두는 시간이 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모두의 열망에 힘입어, 각자의 10년 후의 모습을 하나씩 나누게 되었다. 사실 그것이 내가 은근히 바랐던 결과이기도 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오히려 스스로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을 끌어내고 싶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파이어족이 되어 그림을 그리며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했고, 누군가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혼자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이는 그저 건강하게 하루하루 출근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담백하게 말했다. 그 목소리 하나하나가 진심이었고, 그 순간 우리는 서로의 마음에 담긴 미래를 함께 나누는 귀한 시간을 보냈다.
질문에는 꼭 말로 답하지 않아도 된다. 어떤 질문은 마음속에 오래 머물러,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오히려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은 대답이 더 오래 남고, 더 깊이 스스로를 움직이기도 한다.
토론의 목적은 정답을 내놓는 데 있지 않았다. 질문 앞에 멈춰 서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스스로의 길을 그려보는 데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변화는 시작되고 있었다.
돌아보면, 이 작은 경험은 내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나 역시 ‘10년 후의 나’를 깊이 떠올려 본 적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직원들과 함께 같은 질문 앞에 서니, 나는 내 안의 두려움과 기대를 동시에 마주하게 되었다. 10년 후,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을까? 무엇을 지켜내고 싶을까? 그 물음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이제 나는 안다. 질문은 답을 강요하지 않아도 된다. 때로는 그저 질문을 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질문을 품은 마음은 언젠가 준비가 되었을 때, 스스로의 언어로 답을 내놓는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일, 그것이야말로 내가 이곳에서 동료들과 함께하며 얻은 가장 큰 배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