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교사의 훈육 일기 첫 번째 편
OO아, 흘려도 괜찮아! 치우면 되는걸:) 선생님이랑 우리 같이 치워볼까?
웬일로 평화롭던 점심시간, 갑자기 쨍그랑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도 모르게 입에선 절로 oh my gosh가 조그맣게 새어 나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바로 현장으로 출동했다.
쏜살같이 달려가 확인해 본 현장. 바닥에는 콩나물국 국물이 쏟아져 있었다. 게다가 의자에 걸어놓은 내 옷 안쪽에도 국물이 전부 튀어 있었다. 한 아이가 밥을 다 먹은 후 식판을 정리하다가 실수로 놓친 탓이었다.
아이는 어쩔 줄 몰라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혹여나 혼날까 걱정한 모양이다. 하지만 아이의 예상과 달리 난 혼내지 않았다. 혼내긴커녕 오히려 괜찮다고 흘릴 수도 있다고 닦으면 된다고 말해줬다. 또한, 더 잘 정리할 수 있는 법을 한 번 더 말해주며 물티슈로 함께 치워줬다.
차분하게 웃으며 상황을 대응한 덕분일까. 다른 아이들 역시 날 따라 실수한 아이를 위로해 줬다. 흘려도 괜찮다면서 본인들이 같이 도와주겠다는 말까지 해줬다. 그 결과, 실수한 아이의 얼굴은 금세 편안해졌다. 웃음꽃이 활짝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실수해도 해결하면 된다는 걸, 거기서 배우면 된다는 걸 깨달은 덕분이다.
훈육의 목적은
감정 분출이 아니라
가르치는 것
인간은 모두 신생아로 태어난다. 신생아일 때 우리는 아무것도 혼자 하지 못한다. 눈 뜨는 것부터 목 가누는 것까지. 다 부모의 가르침으로 가능해진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절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자기조절능력이 가장 그렇다. 이 능력의 경우 사람이 25살이 되어서야 제대로 통제가 가능해진다고 한다. 이 능력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이 이때까지 성숙해지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하물며 이렇게 20대 중반도 불완전한데 6살 어린아이들은 어떨까? 당연히 조절 능력이 훨씬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하나 다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은 알고도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몰라서 어려워서 깜빡해서 그러는 것이기 때문이다.
식판을 정리할 때 두 손으로 차분하게 해야 하는 거야,라고 이미 말했다고 해서 그렇게 하지 않은 아이를 비난하지 않았던 것도 이래서다. 예를 들어, 만약 두 손으로 들라고 그랬지!!! 왜 이렇게 애가 칠칠치 못해! 제대로 하는 법 알려줬잖아. 말 좀 들어,라고 말하며 분노했더라면 이 경험 탓에 실수를 두려워하는 아이로 성장하게 될 테니 말이다.
실수를 두려워하는 아이가 된다면 시도를 전혀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그런 무색무취의 삶을 살게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교육의 결과가 된다면 얼마나 슬플까.
따라서 교육자라면 훈육의 목적은 내 화를 쏟아내는 것이 아닌 한 아이가 자립하도록 인내하며 가르치는 것임을 늘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실수를 두려워하는 아이가 아니라 실수해도 일어서는 아이로 키워야 하니 말이다!
물론 늘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훈육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쯤은 안다. 교육자도 사람이지 않은가. 하지 말라는 행동을 반복해서 하는 아이들을 보면 나조차 때론 일부러 저러나 싶어 화가 울컥 치솟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바로 감정적으로 대응하려고 하지 않는다. 깊은 호흡을 내쉬며 진정한다. 왜? 나는 어른이니까. 아이와 똑같이 굴면 안 되지 않은가. 아이를 가르치는 건 한 그루의 건강한 나무를 키워내는 과정임을 기억하려는 이유다.
그래서 난 매일 반성하며, 어투를 점검한다. 단호하고 엄격하게. 되도록 짧게. 칭찬으로 훈육하기. 이 3가지를 기억하려고 한다. 건강한 자존감을 뿌리로 둔 채 사회의 일원으로 자립하도록 이끄는 것. 나와 함께 하는 아이들이 이렇게 되길 간절히 소망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