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담 Dec 11. 2018

지금 여기의 소중함

05. 모든 요일의 기록

오랜만에 참 따뜻하면서 담백한 책을 만났다. 이 책은 바로 김민철 작가님의 <모든 요일의 기록>이다. 필사 모임에서 이 책의 한 구절을 필사한 적이 있는데 너무 좋아서 책도 읽어봐야지 생각만 하다 드디어 읽게 되었다.


필사하면서 만난 좋은 문장에 기대를 한 채 책을 집었다 실망한 적이 있었다. 물론 나에게만 안 맞았던 거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다시 기대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는 내게 현실로 다가왔다. 이 책은 정신적으로 지쳐있던 내게 달콤함을 선물해 줬기 때문에.


어쨌거나 누구나 뇌의 용량에는 한계가 있으니, 몸은 감정을 기록하는 일도 떠맡은 것처럼 보인다. 특히 내 몸은 유난히 나쁜 뇌 덕분에 유난히 고생이다.

‘몸에 기록한다.’

이 문장 덕분에 나는 서른 살이 넘어 나의 기억력과 화해하였다. 더 이상 나는 내 기억력을 책망하지 않는다.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꼭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해서 사는 건 아니니. 《죄와 벌》의 주인공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니. 나는 기억을 잘하는 나보다 눈물이나 웃음이나 심장소리로 순간순간을 몸에 기록하는 나를 더 좋아한다. 그러니 이 책은 그 기록에 관한 기록이다.


작가님의 기억력은 매우 좋지 않은 편이다. 11년을 카피라이터로 일했지만 자신이 썼던 카피 문구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 한다고 한다. 아마 의아할 수 있다. 나 또한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그럼에도 작가님의 부족한 부분을 처음부터 드러내는 부분이 내겐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니까. 나부터도 내 약점을 드러낸다는 것이 아직 힘든 일이기에. 하지만 작가님은 용기를 내셨고 지금까지 단점이라 여겼던 그 부분마저 사랑으로 감싸셨다. 몸에 기록하는 나를 더 좋아한다는 부분이 왜 이리도 마음을 간질이는지  모르겠다.


약점을 쉽게 드러내는 사람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한동안 퇴사 후 세계일주를 떠나는 붐이 일었던 적이 있다. 그 여정 속에서 진짜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는 기사들이 수십개 수백개 쏟아지곤 했다. 내가 퇴사를 한 시점에도 관련 글들이 매우 많았기에 혹했다. 나 또한 그들처럼 진짜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떠나고 싶었다. 돈 때문에 결국 포기했지만 한편으로는 계속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작가님 또한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퇴사 후 프랑스로 1년 간 떠나있겠다는 결심을 하셨다. 2년 뒤에도 이 버스 안에서 지긋지긋한 쑥색 커튼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에 프랑스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고 불어학원도 다녔다. 일탈이라고 하면 일탈일 수 있는 그 여정 내에서 이 결심을 뒤바꾸는 책을 만나는데 바로 그 책이 <행복의 충격>이다.


“참으로 이곳에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 아니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은 올 곳이 아니다. 이곳은 내일의 행복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올 곳은 아니다. 지금 여기서 행복한 사람, 가득하게, 에누리 없이 시새우며 행복한 사람의 땅”이라고 지중해에 대해 딱 잘라 말을 말했다.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하지 않다면 원하는 곳에 가서도 행복할 수 없다는 글. 이 글이 작가님한테 미친 충격만큼 내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행복을 찾기 위해 떠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육체의 지중해는 지금도 여전히 나를 유혹한다. 끊임없이 그곳으로 오라 손짓한다. 반면에 정신의 지중해는 나를 지금 이곳에 살게 한다. 내 마음가짐에 따라 이곳이 지중해가 될 수 있음을 알게 한다. 바람이 불고, 달이 뜨고, 낙엽이 지고, 겨울이 오고, 다시 봄이 오고, 그 모든 아름다움이 지금 여기에 있다.


작가님이 지금 이 곳의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처럼 나 또한 유토피아란 내 마음, 내 생각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다는 걸 깨달은 뒤 더 이상의 아쉬움은 갖지 않기로 했다. 아예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지금 내가 사는 곳을 부정하면서 떠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위 글의 구절처럼 바람이 불고 달이 뜨고 낙엽이 지고 겨울이 오고 다시 봄이 오는 그 모든 아름다움이 지금 여기에 있으니까.   


calligraphy by 소담한 하루




이 작가님의 또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두 번째 삶을 사는 것처럼 살아가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