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담 Dec 17. 2018

쉽게 깨지지 않는 단단한 말그릇을 만든다는 것

07. 말그릇

말을 하다가 내 맘처럼 되지 않으면 분노를 택하곤 했다. 옆사람 의견을 듣고 수용하려 노력하기보다 내 고집을 피우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대화를 하다가 자주 울거나 화를 냈고 대화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못했다.


말그릇이라는 책 이전에 <가짜 감정>이라는 책을 통해 분노 이면에 가려진 내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진짜 감정을 표현해 본 적이 별로 없던 나는 시간이 지나자 다시 익숙한 감정인 분노를 택하게 됐다.


후회하고 자책하기도 했지만 다시 한 번 내게 변화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내가 나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내게 기회를 주지 않을 테니까.


그 때 읽게 된 책이 바로 오늘 소개할 <말그릇>이란 책이다. 나의 말그릇이 넓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긴 했지만 일말의 믿음을 가지고 책을 선택했고, 책을 다 읽자마자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울컥해졌다.


편하고 가까운 관계일수록 ‘말의 경계’는 무너지기 쉽다. 감정과 말을 다듬어야 할 필요성을 별로 못 느끼기 때문에 여과 없이 말을 던지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관계 속에서 생긴 말의 상처야말로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다. 정작 그 말을 내뱉었던 사람은 금세 잊어버리고 돌아서지만, 그 말을 들었던 사람은 시간이 흘러서도 잊지 못한다. 그 한마디가 그의 인생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오래도록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어릴 때 부모님의 날카롭고 무심한 말에 아파했던 사람일수록 오히려 자신의 아이에게 그 패턴을 반복할 확률이 높다.


나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말을 세게 하시는 편이며 고집도 세시고, 자신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시는 모습에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혼자 힘으로 살아오면서 이런 성향을 갖게 된 거라 아버지와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다. 하지만 말투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았었기에 말투만은 닮지 않으려 했으나 축적된 학습은 무서웠다. 나 또한 아버지의 말투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말은 한 사람이 가꾸어 온 내면의 깊이를 드러내기 때문에 말 그릇을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내면이 성장해야 한다.


아직 나의 내면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버지를 이해하려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그 노력이 내 안에 있는 내면아이가 자라도록 도와주지는 못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나는 내 말 그릇을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내면이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처음부터 온전한 게 어디 있을까. 누구나 살면서 말실수도 하고 말에 속기도 하고 말 때문에 관계가 틀어지는 아픔도 겪는다. 다만 그 말에 관심을 기울이고, 나의 말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보겠다고 결심하면 그때부터 말 그릇은 조금씩 성장하게 마련이다.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그릇을 고치기 위해서는 그 균열을 알아보고 매만지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꾸만 날선 말이 쏟아진다면, 내 마음의 어느 곳에 날이 서 있는지 알아보는 게 첫 단계인 것처럼. 말을 만들어내는 마음을 살펴서 그 균열을 메우는 것, 그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바뀌기로 결심한 자체만으로 변화가 시작된 것임을 인지했다.


자기 마음 한 평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색을 모른 척하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감정만 보여주면서 살게 된다. 특히 ‘분노’라는 감정에 익숙해진다.

화를 내는 습관을 고치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부터 알아봤다. 속상하거나 실망하거나 서운할 때도 화를 내는 이유는 '~니까 화를 내는 거지.'라는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힌 채 내 여러 감정을 존중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감정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욱하며 반응하거나 ‘좋아 혹은 싫어’, ‘편안해 또는 불편해’로 감정을 이분화한다. 대화 중에 감정을 지각하는 능력을 키우려면 3초 동안 진짜 감정을 찾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잠시 멈춤 질문’이라고 부른다. 감정이 출현한 그 순간 3초 동안 아래 질문을 되새기며 스스로에게 답하는 것이다.

‘지금 이것은 어떤 감정일까?’ ‘이 감정이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방법을 실제로 적용해봤는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됐다. 남자친구가 내 말에 집중하지 않아 화가 났을 때, 순간 이 감정이 무슨 감정인지 이 감정이 내게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었다. 화가 아닌 속상함이 실제 감정이었고 남자친구가 내 얘기를 집중해서 잘 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고 말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직은 이 과정이 어색하기 때문에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


한 사람의 공식 속에는 숨겨진 배경과 충분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그 삶을 직접 살아보지 않고 공식의 가치를 논할 수는 없다. 따라서 말 그릇이 큰 사람들은 ‘좁힐 수 없는 차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대화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의 공식이 무엇인지,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상대방의 세계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어떠한 말로도 영향력을 끼칠 수 없음을 기억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즐겨 사용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야?”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어?”

“네 결정에 영향을 준 기준은 뭐야?”


살아오면서 생긴 공식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 나는 이 차이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공식만이 맞다고 생각했고 내 공식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내겐 꼭 필요하다는 걸 안다. 앞으로는 상대방이 왜 그런 공식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질문을 해보려 한다.


누구나 원하지 않는 공식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것, 그 공식이 인격의 차이에서 생긴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함부로 충고할 수 없게 되고, 그야말로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는 게 가능해진다.

그 순리를 알게 되면 비로소 말이 무거워지고 깊어진다. 그런 깨달음이 쌓이면서 우리는 조금씩 성숙해진다.

내가 장녀이기 때문에 알아서 척척 잘 해내야 한다는 공식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걸 염두에 두자.


나만 말을 세게 하는 것도 아닌데라며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나의 작디 작은 말 그릇을 무시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실제 도자기 그릇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나 또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쉽게 깨지지 않는 단단하고도 큰 말그릇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나의 성장을 위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