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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담 Dec 20. 2018

글을 쓰면서 나는 진짜 나를 마주한다

08. 글쓰기의 최전선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겐 참 어렵게 느껴지는 일이었다. 쓰고는 싶었지만 '내가 작가도 아닌데, 뭘...'이라며 망설이곤 했다. 그래도 이 때문에 도전을 망설이고 싶진 않았다. 내 글을 남긴다는 건 너무나 매력적인 일이었기에 일단은 저질렀다.


brunch라는 곳에 글을 올리면서도 한 편으로는 왠지 모를 불안함이 느껴졌다. <함께 쓰는 성장의 비결> 매거진의 글을 작성하면서도 '내가 뭐라고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다른 분께서 그럴 필요 없다며 자신감을 가지라 말씀해주셨기에 그나마 불안감을 떨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한 편에는 알지 못할 미묘한 감정이 남아있었다. 내가 글을 써도 되는 지를 알고 싶었기에.

brunch에서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읽었다. 리뷰를 보자마자 이 책이라면 내가 갖고 있는 의문을 약간은 해소시켜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쓰기를 갈망하는 동시에 망설이는 이중적 감정에 대한 의문을.

다행히 정액결제를 해서 이용하고 있는 리디셀렉트에 이 책이 있었기에 바로 읽기 시작했다. 대략 3시간만에 완독했고 은유 작가님만의 글쓰기에 대한 애정과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에 마음이 울컥함을 느꼈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선동하는 게 아니라 글 쓰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다는 심심한 진실을 말하고 싶다. 글 쓰는 인권변호사, 글 쓰는 건축가, 글 쓰는 정신과 의사, 글 쓰는 예술가 외에도 글 쓰는 아르바이트생, 글 쓰는 꿈 많은 주부, 글 쓰는 종갓집 맏며느리, 글 쓰는 시민단체 활동가의 사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작가와 독자의 분리,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분리, 선생과 학생의 분리, 지식인과 대중의 분리,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라는 치안적 질서는 각 개인의 능력과 재미를 제한한다. 한 사람이 직업의 틀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존재로 변신할 때, 자기 삶의 풍요를 누릴 수 있고 타인의 삶에 대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

글쓰기의 최전선-은유


누구나 글을 쓸 수도 있다는 이 담백한 말이 참 위안이 되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에 저지르긴 했지만 머뭇거리던 내게 이보다 더 좋은 답변은 없었다. 스스로에게 한계를 부여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편협된 시각을 보이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나는 글 쓰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 단순히 하나의 직업으로만 나를 설명하기 보다 여러가지를 하며 다채로운 삶을 살아가는 나를 글로 표현하고 싶다.


글 쓰는 일이 작가나 전문가에게 주어지는 소수의 권력이 아니라 자기 삶을 돌아보고 사람답게 살려는 사람이 선택하는 최소한의 권리이길 바란다.

글쓰기의 최전선-은유


brunch에 <나로서 살아갈 용기>를 연재하게 된 것도 진짜 나답게 살려고 한 선택이었다. 이 글을 읽으니 그 마음이 다시 떠올랐다.

글을 쓴다는 건 사실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자기 고백류의 이야기를 많이 쓰기에 더 부끄러웠다. 내 안의 상처를 드러내야 했기 때문에. 하지만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더 숨통이 트인다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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