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당신은 지루함이 필요하다
어렸을 때의 나는 미끄럼틀에 누워 하늘만 바라봐도 행복함을 느끼는 아이였다. 보상이 따르지 않는 사소한 일이었음에도 그 때의 나는 나에게만 집중하는 지루함의 순간이 주는 기쁨을 알고 있었다.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 이 시간은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줄어들었다. 나 자신 이외에도 신경써야 할 것은 너무나 많았고 그 속에서 나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으니까. 이 지루함을 회피하다 보니 나는 내 마음의 소리를 경청할 수 없었고 남들이 제시한 기준에 맞게 행동하는 데만 신경을 썼다. 늘 뭔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거라고 여겼다. 뭘 해야 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른 채 그저 바쁘게 하루를 굴려가는데만 집착했다. 세상의 성공 기준과 가치만을 따르려고 애썼다. 인생의 중심은 나임에도 나는 그 중심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 상황에 몇 년간 노출되다 보니 나는 결국 나를 잃고 말았다. 무력감과 우울감이 덮쳐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해낼 수 없을만큼 지쳐버렸다. 무서웠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데 계속 이렇게 살아야 될까봐. 내 마음은 사이렌을 울리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잠시 멈추고 자신을 봐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지금 내 마음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했다. 눈을 감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보기도 하고 유도 명상을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좀이 쑤셔서 5분이 채 되기도 전에 몸을 움직였고 유도 명상을 하다가 중도 포기하고 다른 영상을 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주일에 1-2번씩은 꼭 이를 진행했다. 다행히 이 습관이 쌓이다보니 집중하는 게 조금씩 쉬워졌고 마음도 챙길 수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니 순간의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어떤 길인지가 조금은 더 명확해졌다.
이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 책의 내용은 더 공감이 갔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는 지루함의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는데 다 읽고나니 나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여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지루함의 순간을 누린 덕분에 다시금 '나'를 되찾을 수 있었던만큼 앞으로는 더 자주 지루함의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이 시간이 모이면 앞으로 어떤 흔들림이 찾아와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