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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Aug 07. 2021

독립 일기(7)

휴식의 끝에.

'쉬어도 쉰 것 같지 않다.'

한동안 계속해서 든 생각이었다.


주말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는데도 어쩐지 원하는 만큼 충전되지는 않는다.

그럴 땐 나 자신이 오래된 배터리처럼 느껴진다. 조금만 소모해도 훅훅 닳버리니 말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몸을 움직이는 것뿐만 아니라 머리를 쓰는 것, 마음을 쓰는 것도

에너지가 소비되니까. 온종일 몸은 쉬었을지언정 머리와 마음은 전혀 쉬지를 못했던 것이다.


소파에 드러누워 있는 동안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간다.

이다음은 뭐지? 난 어디로 가야 하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때 이랬다면 어땠을까. 그 기회를 잡았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내 인생에 다른 기회가 다시 올까.


하루를 돌아보며 기록하고 순간의 통찰을 하지만 그 순간조차 마음이 자유롭지 못했다.

사색의 시간이 어느 순간 나 스스로에게 강요되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생각하는 것조차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결국 내가 사용하는 시간의 집합체일 텐데

몸도 마음도 어느 하나 제대로 쉬지를 못하고 하루 종일 일만 한 셈이다.

그것도 꽤나 비효율적으로.


끊이지 않고 신경 쓸 일이 생길 때는 제발 인생에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큰 일들이 해결되고 더 이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게 되니 편안하기도 하지만

인생이 고여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느낌이 든 순간, 내게 사색의 시간은 더 이상 휴식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삶에 다가오는 어떤 고통들은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라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적절한 고통이, 간절한 필요가 없다면 나라는 인간은 정말 움직이지도 않을 수도 있으니.


간절한 필요를 바라기엔 지금 내 삶은 너무나 고요하고

고통을 바라기엔 나는 겁이 많다.


긴 휴식의 끝에 느낀 것은 방향을 바로잡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나아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무수한 생각들이 긁고 지나간 자리에는 실행하지 않는 나에 대한 자학과 후회가 남았지만

사실 근본적으로 나는 방향을 제대로 잡지 않아 실천할 에너지가 없었던 것이다.


새로운 사건들이 일어나고 간절한 필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나 역시 그에 걸맞은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제 수많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한 가지 방향을 정해야 할 때다.


숨을 고르고 한 방향으로 묵묵히 걸어갈 각오.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결정한 일을 해 나갈 의지.

긴 휴식의 시간 동안 외부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내부에서는 어떤 군더더기가 떨어져 나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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