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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Mar 20. 2022

휴직 기록.

나는 엄마와 다르다.

 때로 어떤 고민은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생각들을 그대로 두면 그 무게에 짓눌릴 것 같아서, 나아지지는 않더라도 곪지 않기 위한 것이다. 누군가의 삶에 함부로 해결을 자처하는 것은 그래서 위험하다. 그들의 고민은 생각보다 깊고 무겁다. 무수한 불면의 밤을 해결하는 것은 자기밖에 없다. 


 나는 강박처럼 한 생각에 매달리고 끝을 상상한다. 무수한 가지들이 뻗어 나가고 온갖 것들이 머리를 훑고 지나고 나서야 잠에 든다. 그 생각들을 정리하던 와중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엄마는 나의 어떤 부분은 절대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엄마는 외할머니의 장례식 날 울지 않았다. 눈물이 고인 것은 보았지만 모두가 상상한 것처럼 펑펑 울지는 않았다. 그녀의 세상은 좁고 단단하다. 그 세상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살뜰히 보살피고 통제한다. 세상 밖은 아주 큰 불안과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를 사랑하고 그래서 그녀의 분신을 내게 심었다. 내게 세상을 알려준 최초의 여성은 그렇게 자기 흔적을 내게 남긴 셈이다. 


 울타리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강박적 사고, 한 가지 생각에 골몰하는 성향, 밖에 있는 것들을 경계하고 의심하는 태도. 이 모든 것들이 한 번에 밀어닥칠 때 나는 그녀의 분신이 나를 잠식했다 여긴다. 그럴 때면 최대한 깊게 숨을 쉰다. 잠시 엄마를 보듯 나를 바라본다. 안쓰럽게. 애정을 담아. 머릿속으로 딱딱한 껍데기를 상상하고 녹아내리길 기다린다.  


 나는 그녀가 안쓰럽다. 삶의 다른 부분은 전혀 알지 못하고 생존이라는 것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가 울타리 밖을 나가는 것을 누구보다 두려워한다. 그래서 내게 모든 관념들을 알려주었고 그게 내 세상이 되었다. 그녀에게는 이런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눈에 보이는 그녀의 삶을 보이는 대로 말하지 않는다. 내가 느낀 바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내게는 그게 사랑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삶을 바꿀 수 없고 불면의 밤을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다.


 어쩌면 나도 엄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을 것 같다. 아주 두꺼운 껍데기를 녹이고 그녀의 분신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아마 나도 울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녀와는 다른 존재이지만 어떤 부분은 공유한다.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지만 사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나 태도 같은 것들은 유사하다. 이런 것들을 자각하는 것을 불쾌한 일이다. 


 부모를 넘어서는 자식은 없다는 말이 있다. 전혀 다른 집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다른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더라도 자식은 부모를 넘어서기 어렵다. 알아채지 못할 뿐 주 양육자는 최초의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무의식 중에 비슷한 단어를 쓴다거나 말투를 사용하고, 세상을 같은 방식으로 바라본다. 가치관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 같은 본질의 것을 부모로부터 답습하기에 비슷한 패턴이 대물림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을 강박의 순환이라 볼 수 있다. 


 성인 이후에도 알아채고 의식해 다른 패턴을 익힐 수 있지만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배우듯 그렇게 수월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적절한 삶의 충격은 그 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데에 도움이 된다.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다른 삶을 선택하고 싶다. 내 삶의 주체는 나여야 한다. 이런 생각이 강렬하게 들 만큼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고 나면 사람은 변한다.


 누군가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생각하지만 나는 변한다 믿는다. 단지 그 과정에서 종종 과거의 습관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겠지만 정말 원하면 어느 순간 변해 있다. 나선형으로 원을 그리며 위로 올라가는 깔때기 모양을 생각하면 된다. 돌고 도는 것 같아도 어느덧 위로, 더 넓은 곳으로 가고 있다. 

 같은 지점의 고민을 수없이 반복하고 현실은 전혀 변하지 않는 것 같아도 ‘나는 사실은 변화를 믿는다.’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모든 것은 변한다. 어쩌면 이 믿음 자체가 엄마와 나의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무수한 불면의 밤을 보냈다. 같은 사람과 비슷한 대화를 나누었지만 나는 변화를 믿는다. 그래서 그 밤은 엄마의 것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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