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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Oct 02. 2023

나의 난소생존기

수술중단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다. 머릿속으로 최악의 경우를 떠올리며 자주 불안해하곤 한다. 하지만 내 눈앞에서 그 최악의 상상이 현실이 된 적은 거의 없었다. 물론 살면서 고통스러운 경험도 많았고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건 최악의 불행이라기보다는 이미 주어진 환경이거나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사건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삼십 대 후반의 미혼인 나는 삼십 대 후반의 미혼인 친구가 많다. 부쩍 친구들에게서 자궁근종, 난소 낭종 수술을 했다는 소식이 자주 들렸다. 반복되는 방광염 증상에 비뇨기과가 아닌 산부인과를 찾은 건 그 때문이었다. 혹시 나도 근종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근종이 있다면 떼어낼 각오로 찾아간 병원에서 초음파를 보는 의사의 표정이 심상찮았다.  왼쪽 난소에 꽤나 큰 혹이 있다는 의사의 말에 덜컥 수술 날짜를 잡았다. 초음파 상으로는 기형종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건 수술 후 조직검사를 해 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별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매우 비논리적인 유아기적 믿음이었다. '설마 그런 큰 일이 벌어질 리 없어'라는 식의, 모든 위험은 예측 가능할것이라는 믿음.


 이후 내게는 여러 일들이 한 가지 방향을 향해 급박하게 일어났다. 매 사건마다 그럴 리 없다며 부인했지만 그 방향은 또렷하게 '불행'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미 뱃머리를 틀어버린 이후엔 아무리 방향을 바꾸려 해도 쉽지 않다. 그때의 나는 내가 가는 방향이 어디인 줄도 모른 채, 아니 모른척한 채 그저 닥친 일을 수습하기 바빴다.


 난소 수술 날짜를 잡고 1주일 후, 갑자기 급성 충수염으로 인한 복막염으로 복강경 수술을 받게 됐다. 첫 전신마취였다. 난소의 혹은 여전했다. 이후 다시 난소 수술을 받기 위해 복강경 수술을 시도했지만 수술이 중단됐다. 이전의 수술에서 발생한 장기 유착이 너무 심해 복강경으로 수술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결국 외과 전문의가 있는 대학병원으로 가야 했다.

 수술이 중단되었지만 복강경 수술을 시도했기에 회복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 작별할 줄 알았던 왼쪽 난소의 혹은 그대로였고, 전신마취도 올해 들어 벌써 두 번 째였다. 게다가 장기 유착이 워낙 심하니 다음 수술은 개복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예상치 못한 일에 당혹스러웠다. 병실에 누워 펑펑 울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일들이 현실에 나타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른 것은. 병실에 누운 채 내 머릿속은 여러 가능성들을 떠올렸다.


 1. 개복수술을 해야 해서 배에 크게 흉터가 남을 수 있다.

 2. 어쩌면 왼쪽 난소는 아예 절제되어야 할 수도 있다.

 3. 수술 도중 장기가 손상되어 응급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차마 떠올리기도 무서운 일이지만,

 4. 조직검사 결과, 혹의 정체가 더 안 좋은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가능성을 생각하며 동시에 어쩌면 모든 것이 좋게 풀릴 경우도 생각했다. 불행한 일만을 현실이라고 가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애써 상황을 낙관했다.


 1. 대학병원에서 기적적으로 복강경 수술 정도로 가능할 수도 있다.

 2. 왼쪽 난소를 살리는 방향으로 수술을 잘해주실 수도 있다.

 3. 응급 상황이라도 봉합만 잘 되면 된다.

 4.......

 나에게 네 번째 가정은 어느 모로 보나 좋게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상황을 정리해도 불안이 불쑥 치솟았고 그때마다 나는 인터넷에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없는지 찾아봤다. 지금 생각하면 검색할 때마다 '경계성 종양'이라는 단어를 자주 본 것은 꽤나 운명적이고 신기한 일이다. 여러 정보를 읽어 보니 난소 경계성 종양이 크기가 클 경우 나와 증상이 비슷했다. 종양이 커지다 보면 주변 장기를 압박할 수 있고 그러다 보니 소화불량, 소변을 볼 때 불편감과 같은 증상이 있을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애써 그 단어를 모른 척했다. 난소 경계성 종양의 경우 크기가 크면 해당 난소를 절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삼십 대 후반의 미혼인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난소와 함께 살아왔으면서 난소의 기능에 대해, 난소가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 대략적으로는 알지만 큰 관심이 없었다. 내가 난소의 존재를 알아차릴 때는 월경을 할 때뿐이었다. 그마저도 꽤나 귀찮아했다. 그렇게 홀대해 놓고 이제와 한쪽 난소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하니 덜컥 겁이 났다. 건강에 이상이 생기거나 너무 이르게 폐경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지금껏 홀대당한 것에 복수라도 하듯, 난소에 대한 생각은 그때부터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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