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가 된 것만 같은 날
나는 사회 초년생이 아니라 중년생이다.
대기업의 지역본부에서 근무하다 보면 생각보다 사람들의 이직률이 낮다는 걸 몸소 느낄 수 있다. 지방에서 살기에 딱 적당한 월급 그리고 적당한 연차가 쌓이면 승진하는 구조다. 내가 승진할 때, 내 옆사람도 같이 승진하기에 40살이 넘었는데도 팀 내 막내인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한국의 고령사회를 몸소 느낄 수 있달까?
오늘은 새롭게 바뀐 부장님과 함께한 업무 면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조직의 이슈로 부장님이 갑자기 바뀌었다.
사실상 연중 인사발령은 거의 없기에 특이한 케이스라고 봐도 무방하다. 모든 사람과 다 맞을 수 없겠지만 이 부장님과는 전에도 일할 때,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다시 만난 게 영 싫었다. 지금의 관리자와 맞지 않다고 생각한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업무 피드백이라는 이유로 사람의 자존심을 긁고, 약간의 남성 편향적이며, 윗분들에게 보이는 것을 매우 중요시한다. (사내 신문고에 신고된 이력이 1번 있다) 이 사람은 "나 이런 업무하고 있어요"라고 자기에게 어필하는 걸 좋아하는데 나는 그런 성격이 아니다. 나 혼자 해결하고 결과만 보고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내가 이 분과 업무적 성향이 맞지 않는 것일 수 있다. 물론 부하 직원이니 내가 그에게 맞춰야 하는 건 맞지만.
내가 지금하고 있는 업무가 무엇인지, 해당 업무를 어떻게 개선시켜나가고 싶은지 등등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다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현재로서는 좋은 고과를 받기 쉽지 않은 구조이며, 연말의 평가를 염두에 두었을 때, 후순위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다시 말해, 업무적 각인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나도 안다.
좋은 업무 분장을 받지 못했기에 결과론적으로 업무량이 매우 줄었다. 물론 일의 편함은 얻었지만 무기력함을 얻었다.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던 터다. 업무시간에는 집중해서 최고의 성과를 내자! 가 내 목표인데, 지금 맡은 담당 업무가 별로 없는데 어쩌란 말인가? 나한테 주어진 업무 자체가 성과를 내기보다는 안정지향적인 리스크 관리 업무인데? 내 선에서는 이게 최선일걸?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업무를 찾아서 개선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한 것일까? 아님 루틴한 업무 투성이라 여기서 더는 재미를 찾기가 힘든 것일까?
이 두 개 다 맞는 것이겠지만 나는 내 업무를 넘어서 다른 사람의 업무를 건들면서까지 하고 싶지 않고, 관심도 없다.
반복되는 업무 중에서도 업무 효율을 높이거나 자동화를 하는 등,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겠지만 그걸 하려는 내 적극성이 떨어지는 거겠지라는 생각만 든다. 괜히 작아지는 기분만 들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면담을 하고 나오니 "있는 듯 없는 듯"한 상태로 전락해 버린 것 같았다.
일에는 욕먹는 값도 포함이라는데 오늘의 나는 업무 피드 백을 받은 것일까? 가스라이팅을 당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