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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담 May 03. 2020

삶이 버거운 날이면 도망을 가자


 사람도 겨울이면 겨울잠을 잘 수 있으면 좋겠다. 날이 추워지면, 겨울잠을 자고 싶은 사람은 북극곰처럼 겨울잠을 자는 거다. 겨울이면 호수는 표면이 꽁꽁 언다. 그 속 깊은 곳까지 꽁꽁 얼어서 아무것도 살지 않을 것 같지만, 봄이 오면 우리는 알 수 있다. 봄이 오고 호수가 녹으면 그 안에 몸을 숨기고 있던 물고기가 다시 표면으로 나와 힘차게 헤엄 친다.

 

삶이 추울 때, 멀리 도망을 다녀오는 건 어떤가. 지금 당신을 둘러싼 세상에서 떠나면 큰일이 날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당신은 세상에 그렇게까지 큰 영향력이 없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이 흘러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는 것처럼 세상은 그저 있는 그대로 흐를 뿐이다. 몇십 년을 사는 인생의 긴 여정 속에서, 힘들면 몇 년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괴로워서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지던 어느 날, 나는 내 마음속으로 도망지를 정해뒀다. 강원도의 해변가 근처 고요한 곳. 그곳에서 읽고 싶은 책들을 한 무더기 가지고 가서, 책이 읽고 싶을 땐 읽고, 자고 싶을 땐 자고, 산책하고 싶을 땐 나가서 걷고, 건강하게 끼니를 챙겨 먹어야겠다. 카카오톡과 sns를 지우고, 다른 사람들은 뭐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귀를 닫은 채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하며 쉬어야겠다. 정말 이 곳으로 도망간 적은 없지만, 삶이 힘들 때면 난 이 도망지를 상상하고 구체화한다.


 나는 당신이 이기적이기를 바란다. 그 무엇보다도 당신만 생각하기를. 회사가 마음에 안 들고 상사가 지독한 스트레스를 준다면 사표를 내기를 바란다. 인간관계로 학교 다니는 게 힘들고 지친다면 1년쯤 휴학하기를 바란다. 버티는 게 미덕이라며 힘들어도 그 순간만 참고 버티면 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이미 많으니.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 따위에 얽매이지 않기를 바란다. 피할 수 없어도 피할 수 있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싫은 일을 피하기를, 그러다 안되면 한 번쯤 도망도 가기를 바란다.




  삶이 버거운 날이면 우리 모두 도망을 가자. 그러다 다시 살아볼 만하겠다 싶을 때쯤에 돌아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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