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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담 May 06. 2020

고슴도치의 삶

 

 살아가는 건 세상에서 내 자리를 찾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하곤 했었다. 그곳에서 나는 완벽히 안전하게, 오로지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리를 열심히 찾다가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세상에 내 자리는 없었던 게 아닐까?’


  작은 내 한 몸 편안하게 쉴 자리를 찾을 뿐인데,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건 내 몸의 상처뿐이었다. 그럴수록 나는 몸을 더 웅크리며 내 자리를 좁혀나갔다.


 ‘이만큼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괜찮을 거야. 안전할 거야.’

 


 남한테 상처를 받지도 않도록, 또 내가 남에게 상처를 주지도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나는 가시를 잔뜩 세우고 사는 고슴도치가 되어 있었다.


 가시를 세운 채로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외부의 작은 소리와 움직임에도 늘 예민해져 있어야 하고, 위험하다 싶을 땐 힘을 써 가시를 날카롭게 세워야 한다.


  나를 지키기 위해 예민해지기 시작했던 일이, 그 가시가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나를 찌른다. 이미 최소한이라고 생각했던 내 공간이 더욱 작아진다. 이제는 목을 똑바로 펴지도 못해 다리를 감싸고 고개를 푹 파묻고 있어야 한다.


 아무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는데, 혼자서 세상과 나 사이에 동그란 원으로 경계선을 그렸다. 그 경계선 밖으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큰일이 날 것처럼 굴었다.


 다른 사람들이 활동하는 낮은 무서웠다. 어느 날부터 조용하고 어두운, 혼자인 밤이 더 편했다. 새로운 사람을 마주친다는 것은 저 사람이 나에게 위협이 되진 않을지 경계해야 하는 일이었다.


 ‘좀 불편하긴 하지만 안전하려면 어쩔 수 없어. 이게 나를 위한 일이야.’


 어느 순간부터 간신히 내 한 몸 앉아 있을 수 있는 작은 은신처가 더 이상 편하지 않았다.



  나는 억울했다.


  ‘왜 나만 이렇게 움츠리고 살아야 하지?’

  

 용기 내서 다리를 한 번 쭉 펴봤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시 갈이를 했다. 가시처럼 보이지만 찔려도 아프지 않을 끝이 뭉툭한 가시로 바꾸었다. 그렇게 해도 괜찮았다.


 햇살이 밝은 날, 은신처 밖으로 한 번 나와 보았다. 늘 어둡기만 했던 공간에서, 나는 원래 어두운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눈부신 햇살이 기분이 정말 좋다.



 세상을 구석구석 다 뒤져도, 어디에도 내 자리는 없다고 생각했던 날들이 있었다. 세상이 이렇게나 넓은데 왜 나를 위한 자리는 없는 걸까 원망스럽기도 했었다.


 어디라도 용기 내 가슴 펴고 세상을 마주하면, 그곳이 자연스레 내 자리라는 걸 깨달았다.


 고슴도치가 처음 제대로 마주한 세상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이제는 상처받는게 두려워 어둠 속에서 마냥 웅크리고 사는 삶을 그만하기로 했다. 어떤 날은 상처를 받아서 그 때 그 날카로운 가시를 내버려뒀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하는 날도 있더라도,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제서야 이전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여유롭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여기, 지금, 너가 존재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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