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던 마법열차
제천에 가야 한다. 오송역에서 무궁화호 차표를 끊었다. 플랫폼에 서 있으니 세 칸짜리 꼬마기차 토마스 같은 열차가 들어온다. 봄가뭄 논바닥처럼 칠은 갈라졌고 그사이 붉게 슨 녹이 보이지만 주황색 무궁화호를 보는 순간 미소가 지어진다.
객차에 들어서니 더욱 정겹다. KTX에 비해 폭이 훨씬 넓다. 시골 인심처럼 좌석 간격도 넉넉하고 통로도 두 명이 여유롭게 지나갈 만큼 널찍하다. 천정도 더 높아 아파트에 살다가 대청마루 탁 트인 한옥에 온 것 같다. 가장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은 소리이다. KTX의 ‘철컹철컹’ 숨넘어가는 소리가 아닌 ‘덜커덩 덜커덩’ 느리게 울리는 무궁화호의 여유 있는 숨소리가 듣기 좋다.
넓은 창으로 겨울 햇살이 눈부시다. 밝은 햇살과 히터에서 나오는 따듯한 온기에 완전히 무장해제가 되었다. 읽으려던 책도 꺼내놓은 노트북도 모두 그물망에 넣어두고 의자를 살짝 젖히고 눈을 감는다. 어떤 경계심도 서두름도 긴장감도 없다. 그저 눈을 감고 ‘덜커덩 덜커덩’ 자장가처럼 감미로운 기차소리를 들으며 반쯤 감은 눈으로 창밖 겨울 풍경을 바라본다.
내 유년의 기억은 기차와 할머니와 함께 한다. 젊은 할머니와 어린 아버지는 대둔산 산골 마을에 살았다. 고사리니 취나물이니 산나물이 흔한 곳이었다. 할머니는 무학이셨지만 총명하고 배짱 있는 분이셨다. 산골에 머물지 않고 집집의 산나물을 모아 서울에 팔고 평화시장에서 옷이나 그릇 같은 생필품을 사서 다시 산골짜기 집집에 팔아주었다. 방학을 하면 그렇게 장사하는 할머니를 따라 기차를 타고 서울 고모집에 가곤 했다. 어디로 가는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 채 할머니 치맛자락만 꼭 붙잡고 다녔다. 그때 완행열차는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호그와트로 가는 마법열차 같았다.
무궁화호는 품이 넓어 사람을 품고 이야기를 싣는다. 옆에 앉은 모르는 이에게 어디 가냐고 무슨 일로 가냐고 애들은 시집장가보냈는지 이물 없이 묻고 대답한다. KTX에서 대화는 금지사항이다. KTX는 야박하고 정이 없다. 그때 나는 팔딱이는 청개구리였고 지금은 신기한 것도 무서운 것도 없는 두꺼비 같다. 무궁화호처럼 넉넉한 마음이어야 하는데 자꾸만 KTX를 닮아간다. 조급하고 신경질적이고 여유도 없다.
무궁화호를 닮고 싶다. 넓은 창으로 두터운 콘크리트 옹벽이 아닌 낮은 담벼락이 보이고, 순식간에 지나쳐 선으로 보이는 풍경 대신 가을에는 단풍을 겨울에는 설경을 볼 수 있는 무궁화 열차이고 싶다. 충북선 철길 따라 논과 밭 시골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23.1.26, 23.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