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마늘밭

[양촌일기] 나는 누구의 눈이 되고 발이 되는 사람인가

by 소똥구리

소록도에 한 부부가 살고 있다. 남편은 눈이 멀었고 부인은 한쪽 다리가 없다. 부부는 마늘 농사를 짓는데 그 마늘밭은 어느 집 마늘밭보다 푸르고 풍성하다.


아마도 어느 날 둘은 만났을 것이고 함께 살게 되었을 것이다. 생활을 위해 남들 다 하는 마늘 농사를 지어볼까 했을 것이고 처음에는 그저 조금 텃밭을 가꾸지 않았을까? 한 두어 평 밭에 마늘을 심고 가꾸기를 몇 년간 했으리라. 보이지 않고 걸을 수 없는데 어떻게 농사를 지었을까? 맨 땅 위를 기어 다니며 풀과 마늘을 손끝으로 만져가며 구별하고 뜨거운 지열에 얼굴도 목도 익어갔으리라.


내곡리에도 늙은 부부가 살고 있다. 할아버지는 쇠스랑으로 땅을 뒤집고 괭이로 밭고랑을 고른다. 할머니는 호미를 들고 배추씨, 부추씨를 뿌리고 깻모, 고추모를 정성껏 심는다. 두 분의 모습은 땅을 파헤치고 생체기를 내는 것이 아니라 흙을 보듬고 쓰다듬는 보살핌인 듯하다. 착한 강아지 살포시 눈을 감고 주인에게 맨 배를 내맡기듯 밭도 지극히 평온해 보인다.


흙속을 뒹굴며 지렁이를 만나면 “고맙다. 네 덕분에 땅이 산다”라고 감사를 전하며 조심스레 괭이질을 하는 할아버지는 마루 끝에 걸터앉아 깊어가는 가을 숲을 눈에 담는다. 할머니는 막걸리 한 잔과 금방 솎아 온 배추에 노릇하게 구운 삼겹살 한 점을 올려 건넨다.


소록도 부부의 마늘밭이 유독 푸른 것은 이 부부가 일편단심 마늘밭만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이들의 모든 관심과 신경은 온통 마늘밭에 가 있다. 어쩌면 마늘 포기마다 이름을 붙이고 각각을 구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이들 부부처럼 지성으로 한 일에 몰두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굳이 교훈을 말한다. 하지만 여기 마늘밭에서는 성공보다 생명과 사랑이 읽힌다.


나는 나의 다리가 되고 나의 눈이 되는 그런 사람과 함께 있는가? 나는 과연 누군가의 다리가 되고 누군가의 눈이 되는 사람인가? 소록도 부부처럼 서로의 손발이 되고 내곡리 내외처럼 서로의 눈귀가 되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마늘밭의 잡초도 맨땅 위의 열기도 두렵지 않으리라. (16.5.2, 23.11.19)



photograph by soddongguri(23.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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