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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똥구리 Dec 31. 2023

뽁뽁이

  오피스텔 한쪽 벽은 모두 유리창이었다. 아래위 두 칸, 좌우로 세 칸 모두 여섯 개의 창이 있었다. 한쪽 벽이 모두 창문이라고 하면 멋진 야경이 보이는 호숫가 고급 호텔을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다닥다닥 붙어 있는 창문의 행렬은 그저 벌집이라 불린다. 밖에 그리 볼만한 풍경도 없다. 주차장으로 쓰이는 황량한 공터와 회색빛 정부청사가 보일뿐이다.


  게다가 춥다. 입주할 때, 3월임에도 여섯 개의 창 모두에 뽁뽁이가 붙어 있었다. 초봄이라 조금은 쌀쌀하였지만 답답하여 모두 떼어냈다. 그리고 계절이 한 바퀴 돌아 다시 겨울이 되었다. 창밖 눈 내린 풍경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춥다.


  돌돌 말아 놓은 뽁뽁이를 꺼내어 창문에 다시 붙였다. 윗줄 세 칸은 모두 붙였고 아래 칸은 양쪽 끝에만 두 장을 붙이고 가운데 창은 비워 놓았다. 보온을 위해서라면 빈틈없이 막아야 한다. 모두 가려 놓으면 눈이 오는지 비가 오는지 안개가 꼈는지 알 수가 없다. 조금 춥겠지만 비어 있는 그 한 칸으로 바깥 풍경과 소통하고 싶었다.


  생활도 효율을 위해서라면 빈틈없이 막아야 한다. 친구, 직장 동료, 선후배 같은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책, 영화, 산책 등 좋아하는 것들을 멀리해야 한다. 어쩌면 한겨울에는 그리하는 것이 옳다. 상당 부분 그렇게 유예하며 살아왔다. 나름 공부할 때에는 공부에, 아이들 키울 때는 아이들에게, 업무 할 때는 업무에 집중해야 했다. 봄이 되면 창문의 뽁뽁이를 모두 거둬내듯 주변을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


  추운 겨울이지만 마음 한 칸 정도는 비워 놓고 싶었다. 그곳을 통해 은은한 달빛과 총총한 별빛을 느끼고 싶었다. (17.1.26, 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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