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산책을 나가기 전 욕실 청소를 한다. 락스를 뿌리고 수세미로 세면대, 욕조, 변기, 바닥까지 닦는다. 바닥 타일 틈 사이는 솔로 박박 문질러 물때를 없애 준다. 마무리로 샤워기를 들고 욕실 전체를 헹궈낸다. 이렇게 청소를 끝내면 칫솔, 샤워볼, 면도기 등 욕실에 있는 물건들을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 내어 놓는다.
아파트 욕실은 햇빛이 한 줌도 들지 않는 어둠의 공간이다. 하루 종일 어둠 속에 있을 이들을 생각하면 안쓰럽기도 하다. 자외선 소독을 겸하여 주말 잠깐이라도 환한 햇볕을 쬐여주고 싶다.
욕실 입구에는 선풍기를 틀어 놓는다. 선풍기를 켜두면 쉽게 물기를 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외출 후 돌아와 뽀송하게 잘 마른 욕실을 보면 마음이 개운하다.
이런 모습을 보면 결벽증이나 세균공포증이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전혀 아니다. 오히려 게으르고 지저분한 편이다. 다만, 이 두 가지 습관, 욕실용품 햇볕에 말리기와 선풍기로 욕실 말리기는 포기할 수 없는 생활방식으로 굳어졌다. 일종의 벽(癖)인 셈이다.
정민 교수님의 저서 ‘미쳐야 미친다’에는 조선시대 각종 벽이 있는 인물들이 출연한다. 진귀한 화초를 모으는 원예가도 있고 좋은 책이라면 어디라도 쫓아가는 장서가도 있다. 지저분한 부스럼을 관찰하고 맛보는 기이한 사람도 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남모르는 벽이 하나 있음을 스스로 즐거워한다. 이는 내가 너무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벽은 개성의 표현일 수도 있다. 본류를 원하지만 그 안에서 구별되고 싶은 욕망, 그것이 개성이다. 벽과 개성이 일치하지 않을 테지만 어느 정도 상통한다. 그래서 너무나 평범해서 이렇게 작은 벽이 있음을 싫어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이 두 가지 벽에 대해 아내는 어떻게 생각할까? 자칫 무해한 이 행위들을 아내는 무척 싫어한다. 칫솔 쓰려면 칫솔이 없다고 싫어하고, 오다가다 선풍기 코드가 발에 걸린다고 짜증을 낸다. 나에게 잔소리하고 구박하는 것은 아내의 유별난 벽이다.
사진_LG인화원입구ⓒ소똥구리(25.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