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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철교를 건너며

by 소똥구리

금요일 퇴근길, KTX는 노량진을 지나 한강을 건넌다. 육중한 한강철교 아래 올림픽대로에는 붉은 후미등을 켠 차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강변에는 화려한 조명의 빌딩이 늘어서 있고 강물은 그 불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매번 보아도 세련되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 불빛들은 보통의 상징이었다. 성실하게 공부해서 평범한 대학에 가고 보통의 기업에 다니며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서 일반적인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보통이고 정상이라 생각했다.


대학부터 엇나갔다. 서울에서 밀려 지방대학에 다녔다. 주중 학교 생활이야 철없이 즐거웠다. 금요일 밤, 무궁화호를 타고 한강철교 건널 땐 그 평범함에 대한 부러움과 그 상실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다. 서울에서 자랐으나 서울의 화려함을 누리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해 후회하고 자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 뼈저리게 다가오진 않았다. 한강철교에서 바라보는 강변의 불빛과 한강에 비치는 빛의 출렁거림을 보면서 그렇게 느껴보려 하였고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무 살 무렵이었다.


그 자책과 다짐 때문이었을까? 나름 열심히 공부했고 대기업에 다녔고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한강변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주말이면 한강공원을 산책하고 자전거를 탔다. 그때 바랬던 거의 모든 것을 이룬 셈이다.


스무 살, 무궁화호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했던 자책과 다짐이 시작이었다. 미숙하고 철없던 시절이지만 나름 대견하기도 하다.


오늘 한강을 네 번 건넜다. 여전히 63빌딩은 햇빛에 반짝였고 밤이 되니 올림픽대로에는 빨간 자동차 불빛이 열을 짓고 있었다.


이제는 후회와 자책은 없다. 지금까지의 성취 때문이 아니고 이제는 내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뿐이다.


덜컹덜컹 한강철교를 건넌다. 그 둔탁한 금속성 울림이 내게 뭐라 말을 건넨다.

(17.4.12, 25.5.14)





사진_한강철교에서ⓒ소똥구리(2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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