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케인》으로 알아보는 미국의 황색언론

'황색 언론'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는가

by 쟈크 내리다


Citizen Kane

《시민 케인》(Citizen Kane)

1941년 미국에서 개봉한 오슨 웰스 (Orson Welles) 감독의 작품.

'경제력이 우수한 언론사 대표의 몰락 그리고 그 이면의 것'에 대한 줄거리를 바탕으로 122분여간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오늘날에 뉴욕타임즈로 으로 불리는 신문사《뉴욕 저널》(New York Journal)의 창시자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를 풍자하는 성격을 띄는 영화이기도하다.

제작사로는 RKO 라디오 픽처스 (RKO RadioPictures) 가 참여하였다.




《뉴욕 저널》(New York Journal) 지면의 1면.

뉴욕 타임즈( The New York Times )의 전신이자, 월리엄 허스트( William Randolph Hearst )를 창간인으로 두고 있는 언론사인 뉴욕 저널( New York Journal )의 1898년 3월 25일자 일간지 1면. 헤드라인 "SPAIN GUILTY!"가 지면의 1/3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강조형 텍스트, 즉 헤드라인은 블래스트(Blast Headline) 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블래스트(Blast Headline)→ 전쟁, 재난 같은 초대형 속보에서 쓰는 충격적인 초대형 활자 제목.


블래스트 헤드라인 (Blast Headline) 의 예시


또 다른 미국 주요 신문사 'DAILY NEWS' 의 블래스트 헤드라인 (Blast Headline). 출처 : GETTY IMAGES


상징적으로 통용되는 '신문'의 이미지는 왼쪽 보다는 오른쪽 이미지에 가까울 것이다. 신문은 헤드라인(Headline), 부제목(Subhead), 리드(Lead), 본문(Body), 사진(Photo), 캡션(Caption), 출처(Byline/Dateline)로 구성되어있다. 그리고 그 구성요소들은 대부분의 경우 상호 비율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상호비율적 규칙을 깨는 언론사들이 존재하는데, 그와 같은 기조의 언론들은 '황색 언론'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왜 '황색'인가

황색 언론. 이미지에서 알 수 있듯, 두 신문사 간의 경쟁으로 인한 비극적 결말로 볼 수 있다.


‘황색 언론’의 기원은 언론이 본래 지녀야 할 공익성보다 상업적 이익과 화제성을 우선시한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활자의 크기가 점차 확대되었으며, 이는 편집 방식의 자극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더 나아가 당시 유행하던 만화 〈옐로 키드(Yellow Kid)〉의 판권을 두고 두 신문사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정기 발행 만화의 판권 명의가 주 단위로 바뀔 정도였다는 사실은, 언론이 스스로를 사회적 공기(公器)가 아닌 단순한 상업적 매체로 전락시켰음을 보여준다. 결국 황색 언론의 시발점은, 언론 권력이 지녀야 할 공익적 책무가 상업적 논리에 의해 후퇴한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좌: 조셉 퓰리처(Joseph Pulitzer) 우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


이러한 대결 구도는 두 가지의 비극을 낳았다. 하나는 자극적인 보도가 전쟁을 정당화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결국 스페인-미국 전쟁(Spanish-American War)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과열된 경쟁이 신문 산업 내부의 노동 환경을 무너뜨려, 종사자들의 근로 조건을 급격히 악화시켰다는 사실이다.

결국 황색 언론의 시발점은, 언론이 지닌 공익적 책무보다 상업적 성공을 우선시한 선택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단순히 당대의 보도 행태를 왜곡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 파국과 산업 내부의 붕괴라는 두 겹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 또한 이 역사적 사례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뉴스가 공론장의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 아니면 클릭 수를 겨루는 또 하나의 상품으로 남을 것인지는 여전히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현재 허스트 그룹은 한국 시장에서도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엘르〉, 〈코스모폴리탄〉, 〈하퍼스 바자〉, 〈에스콰이어〉를 발행하는 자회사 ‘허스트중앙’이 대표적이다. 이는 황색 언론으로 시작했던 허스트 가문이 여전히 글로벌 미디어 산업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조셉 퓰리처는 생애 말년에 ‘퓰리처상’을 제정하며 언론의 공적 책임을 환기했다. 그는 미국 언론의 발전에 기여한 이들을 기리고, 상금을 통해 저널리즘의 질적 성장을 지원하는 제도를 남겼다. 이러한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언론의 이상을 상징하는 기준으로 이어지고 있다.

흥미롭게도, 2020년에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퓰리처와 관련한 전시가 열렸다. 이는 그의 이름이 단순한 개인의 역사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 사회에서도 저널리즘과 예술적 가치에 대한 공론을 이끌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circulation은 부수라는 의미로 사용 되었다. 흡족한 표정의 기업 주역 셋.



오슨 웰스의 영화 〈시민 케인〉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 작품이다. 웰스는 허스트라는 실존 인물을 직접적으로 재현하기보다, 언론 권력과 개인적 욕망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비극을 드라마로 변환해냈다. 그는 ‘사건’을 단순히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예술적 형식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언론 권력이 어떻게 한 인간의 삶과 사회 전체를 비추는 거울이 되는지를 보여주었다.

결국 황색 언론의 역사와 허스트, 퓰리처, 그리고 웰스의 시선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만난다. 그것은 언론이 공익적 책무와 상업적 유혹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의 문제이자, 예술이 그러한 현실을 어떤 방식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바로 이 점에서 <시민 케인>은 단순한 한 언론인의 풍자가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언론과 미디어의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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