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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상샬롬 Oct 14. 2020

부부싸움

15년 차 동갑내기 부부의 결혼생활 이야기 22

  우리 부부는 결혼 전에 싸운 적이 별로 없다. 친구에서 연인이 된 케이스인데 늘 회사일로 바쁜 남편이라 만나면 마냥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결혼하고 나서는 아무래도 각자의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다 한 공간에서 살게 되니 연애할 때보단 사소한 것으로 말다툼을 자주 하게 되었다.


  그래도 결혼하고 6년 후 첫째 딸아이가 생길 때까지는 싸워도 바로바로 미안하다며 금방 면서 잘 지냈다. 알콩달콩 귀엽게 싸웠다고 해야 하나. 서로 다른 부분을 맞추어 가는 과정이려니 싶었고 결혼식 당일 밤에 둘이 약속한 대로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당일날 풀고, 동갑이니 '야', '너 '라는 말이나 욕은 절대 하지 않기로 한 것  잘 지 살았다.


  그러다 딸아이가 생기고는 달라졌다. 일단 육아로 인해 내가 지치니 힘들고 짜증이 났다. 남편도 퇴근 후나 쉬는 날에는 육아를 돕는다고는 하는데 서로 육아에 대한 생각도 다르고 남편은 회사에서, 나는 집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부딪히다 보니 정말 전투적으로 싸우게 되었다. 그래도 싸우고 나면 그날 안에는 서로 화해하며 꼭 풀고 조금씩 더 조심하자며 안아주었다.


  지금은 결혼하고 15년 차. 3년전 둘째가 태어난후 또 한창을 자주 싸우다 요즘은 부부싸움 횟수는 조금 줄었으나 화가 풀리는데 걸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하루 안에 풀지 않고 다음날 아침이나 저녁에 풀 때가 많아졌다.


  며칠 전에는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 5일이나 지나서 화해를 한 적이 있는데 결혼생활 중 그렇게 오랫동안 풀지 않고 지낸 이 처음이었다. 말도 안 하고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같은 공간에 있지도 않았다. 남편이 거실에 있으면 나는 안방에 있고 내가 거실에 있으면 남편은 컴퓨터방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래도 싸우더라도 각자 기본은 지키자 하는 생각이 통했는지(이래서 부부인지) 솔직히 나는 남편의 밥상을 차려주는 것도 싫었지만 그래도 식사를 차려 애들을 시켜 남편이 밥을 먹게 했고 남편은 화장실 청소와 쓰레기들을 분리수거하고 버리는 것 등의 집안일을 다 했다.

  

  그렇게 5일 동안 정말 서로 한마디도 안 했다. 사실 말할 거리가 생기지 않은 것도 희한하다. 급한일도 안 생기고 애들이 다친다거나 아픈 일도 없었고 말이다.


  냉전 5일째가 되자 나는 점점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서로 말도 안 하고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이렇게 지내니 뭐 편한 부분도 약간 있었지만 그냥 마음이 불편하고 답답해서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카톡으로 장문의 글을 써서 남편에게 보냈다. 결론은 미안하고 사랑하고 조심하자. 그리고 저녁은 오랜만에 삼겹살을 구워 먹자고 했다. 그런데 남편의 답변이 없다. 오늘 많이 바쁜가 보다는 생각을 하고 나는 집 앞 마트로 삼겹살을 사러 갔다.


  남편이 퇴근할 무렵 집에 있던 깻잎을 씻어두고 삼겹살을 찍어먹을 소금과 쌈된장 소스도 준비해 두었다. 그리고 된장찌개도 끓여두었다. 잠시 후 '띠띠띠띠'하며 현관 비번을 누르고 남편이 들어왔다.


   남편에게 "왔어? 밥 먹자."라고 5일 만에 어색하게 말을 건넸다. 그런데 남편이 대답을 안 하고 씻으러 간다.

느낌이 이상하다 싶어 남편에게 낮에 보낸 카톡창을 봤다. 헐. 남편이 내 카톡을 안 봤다. 숫자 1이 그대로다.

씻고 나온 남편에게 카톡을 보라고 했고 나는 삼겹살을 구워 남편에게 주었다. 남편은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식사를 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아, 이 사람은 나랑 화해할 생각이 없구나.'


  그래서 나는 거실 작은 상에서 아이들이 식사를 마치자 씻기고 양치를 시키고 재우고 나왔다. 그리고 식탁에 앉아 내 몫으로 남겨둔 삼겹살에 식사를 했다.


  내가 좋아하는 깻잎을 한 장도 안 남기고 다 먹 빈 접시를 보며 너무 화가 나고 속상했다. 삼겹살을 우적우적 먹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나왔다. 내가 원한 건 이런 상황이 아니었는데. 삼겹살을 먹으면서 좀 풀고 화해도 하고 맥주도 한잔 하며 기분 좋게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이게 뭔가 싶었다. 안 되겠다 싶어 컴퓨터방에 있는 남편에게 따지러 갔다.


  그러자 남편은 오늘 바쁘고 정신이 없어 카톡을 보지 못했고 집에 오니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인사하며 밥 먹자고 해서 조금 당황했고 식탁에 앉아 카톡을 보고 '아, 이제는 아내랑 같이 풀어야겠다.'생각하고 식사를 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삼겹살을 구워 한 접시를 주더니 계속 굽기만 하고 안 오더란다. 곧 오겠지 싶어 배가 부른데도 일부러 밥 한 공기를 더 떠서 밥을 먹었고, 먹다 보니 깻잎이 몇 장 안 남아서 다 먹었단다. 그리고 내가 식사하러 안 오길래 아이들과 밥을 먹은 줄 알았고 남편도 내가 얘기하기 싫어하는 줄 알고 방으로 들어갔다는 남편의 이야기.


  상황들이 어이없이 완전히 꼬여 오해해버린 우리 둘이었다. 각자의 상황을 이야기하다 서로 웃음이 나서 한참을 웃었다.


  그래 이게 부부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별일 아닌 듯이 웃어넘기듯 살자, 여보.


  그리고 남편과 또 한 번 약속했다. 다음부터는 무조건 당일 안에 풀자고 말이다.



맛있게 굽고 있는 삼겹살과 새싹 모둠을 얹은 삼겹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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