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세근 정도 달라고 했고 사장님은 봉지 두 개에 시뻘건 생 선지를 담아 주시고 국물이 샐 수도 있다며 한 번 더 봉지에 담아 주셨다. 무게가 제법 나가니 남편은 자기가 두 봉지를 다 들고 차를 세워둔 주차장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주차장으로 가는 내내 남편이 좀 이상하게 말수가 없었다. 남편에게 왜 그러냐고 묻자 남편은 조리가 다된 국에 갈색 선지만 봤지 오늘처럼 시뻘건 생 선지를 본 것은 태어나 처음이라 지금 충격 상태라는 것이다. 허허. 덩치도 크고 키도 큰 남편이 이럴 땐 또 귀엽네.
잠시 후 차에 도착한 남편은 선지가 든 봉투를 뒷좌석에 잘 두고 운전석에 앉았다.
그런데 엉? 남편의 얼굴을 보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다. 그러더니 운전대를 잡고 고개를 푹 숙이면서 하는 말
"여보, 나 잠시만 쉴게. 울렁거려서 바로 운전을 못하겠네."
나는 아까 남편이 충격 상태라고 했을 때 반은 장난인 줄 알았는데 이건 진짜구나. 이 사람 정말 생각보다 더 생으로 된 선지를 본 충격이 컸구나 라고 느껴지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십여분 정도 엎드려 쉬던 남편은 이제 괜찮아졌다면서 집으로 차를 몰았고 무사히 집에 잘 도착했다. 나는 남편이 생 선지가 든 봉지를 보면 또 힘들어할까 봐 내가 들고 들어가겠다며 얼른 뒷좌석 문을 열었다.
그런데 아뿔싸. 생 선지가 든 봉지가 차가 흔들리면서 조금 눕혀졌는지 차 바닥에 새서 시뻘건 피 같은 물들이 조금 고여 있었다. 나는 나 혼자 치우겠다고 했지만 남편은 괜찮다며 같이 치우자고 했고 뒷수습을 열심히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우거지를 넣고 얼큰하게 선짓국을 끓였고 남편은 하나도 못 먹었다는 사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