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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상샬롬 Nov 12. 2020

이벤트를 싫어하는 남자

15년 차 동갑내기 부부의 결혼생활 이야기 23

  우리 남편은 이벤트를 싫어한다. 그래서 나는 연인 사이일 때에도 남편에게 이벤트를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오죽하면 친구

에서 연인으로 사귀자는 말도 비둘기의 똥밭이었던 양재역 앞 의자에서 들었고 결혼 전 프러포즈도 받은 적이 없다. 그냥 양가 부모님들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보니 제대로 된 프러포즈를 받지 못한 것이 어찌나 한이 되던지 원.


  반대로  나는 이벤트 해주는 걸 좋아한다. 이벤트를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즐겁고 내 이벤트로 인해 놀라워하며 기뻐하는 모습들을 기대하는 쾌감이 너무 좋아서 남편에게 자주 해주었는데 막상 남편은 이벤트를 받고 나면 시큰둥하다. 쩝. 그러다 보니 가끔은 서운하기도 하고 서러운 마음이 든 적도 있다.


  그런 남편 덕분에 나는 생일, 화이트데이, 밸런타인데이, 빼빼로 데이 등등의 기념일 날에 뭔가를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남편은 이런 날들은 특히 장사 속으로 하는 행사 같은 날이라며 절대 하지 않는 주의이다.


  어느 날 남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당신은 왜 나한테 이벤트 같은 거 한 번도 안 해줘?"

"이벤트라는 게 가끔만 해주는 거라 좋은 게 아니지. 가끔씩 잘해주는 게 무슨 소용이야. 나처럼 평소에 잘하는 게 좋은 거지.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늘 한결같은 사람이야."

"헐."(그래. 한결같이 안 해주지. 쿨럭)


  말을 너무 잘하는 남편이라 내가 절대로 이길 수가 없다. 사실 남편은 회사에서 회식 등을 가서 맛있는 요리를 먹게 되면 포장해서 꼭 사 오고, 결혼 15년 동안 꽃다발도 서너 번 사온적이 있다. 아무런 기념일도 아니었는데 지나가는 길에 꽃집이 보여서 내가 생각나서 사 왔다며 주었는데 기분이 참 좋았다.


  나는 꽃이나 화분 같은 선물보다 실용적인 선물을 좋아하는데 막상 꽃을 받고 나니 기분이 정말 좋았다. 그리고 부부의 날같이 의미 있는 기념일에는 외식을 하러 나가기도 하는 등 남편의 말대로 평소에 잘 챙겨주는 편이긴 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이벤트를 하지 않는다. 결혼 6년 후 첫째 딸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나도 남편에게 더 이상 이벤트를 해주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대신에 10살 첫째 딸아이가 내 핏줄을 물려받아서인지 가족 생일에 이벤트로 풍선이며 편지며 선물 등을 준비하는데 참 이쁘다.


  부부생활에서 가끔은 색다른 시간이나 이벤트가 있으면 서로에게 참 좋은 것 같다. 새로운 기분도 들고 연애 때 생각도 새록새록 나고 부부간의 정이 더욱 돈독해진달까.


"그러니까 여보, 아주 가끔씩은 이벤트 해주라."(가끔씩 브런치에 들어와서 내 글을 보는 남편에게)



남편 생일 때 했던 이벤트사진(싸이월드에 있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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