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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 비닐 속에 갇힌 새를 발견하다
이런저런 이야기 56
by
항상샬롬
Nov 15. 2020
어제 토요일 오후 남매 두 아이와 함께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아파트 건물 끝 바로 옆에 있는 나무 위에서 비닐 소리가 푸다닥하고 불규칙하게 계속 나는 것이었다.
나무 쪽으로 가까이 가보니 나무위에 기다란 비닐이 걸쳐있고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비닐 옆 나뭇가지에서 짹짹짹 거리더니 내쪽으로 빙 둘러 날다가 다시 나무 쪽으로 가서 앉아 계속 짹짹거렸다.
자세히 비닐 안쪽을 보니 뭔가가 보인다.
헉. 새 한 마리가 비닐 안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고 푸덕거리고 있었다.
요즘 우리 아파트에 외벽 건물을 도색작업 중인데 아마도 옥상에서 아저씨들이 일하시다가 비닐이 나무 쪽으로 떨어졌고 새가 찢어진 비닐 사이로 들어갔다가 못 나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비닐이 아래로 쳐진 쪽에서 새는 가끔씩 푸덕거렸고 날갯짓도 못한 채 지쳐 보였다. 얼마나 이렇게 있었을까.
10살 딸과 4살 아들은 비닐 속의 새를 보고 처음에는 놀라 하고 신기해하다가 불쌍하다
고 난리였다. 나무속에 2층 높이쯤에 있는 비닐 속 새는 내가 어찌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를 막 굴렸다. 119에 신고를 할까 하다가 번뜩 관리소가 생각이 났다.
관리소로 전화하니 소장님이 받으시길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바로 나오셨다. 상황을 보시고 웃으시더니
"아구. 재주도 좋네. 어떻게 거길 들어가 있냐."하시고 다시 관리소라 가셔서 긴 장대를 가져오셨다.
그리곤 바로 한 번에 비닐을 여셨고 새는 단번에 나와 하늘로 날아올라갔다. 나무 속에서 비닐 옆 나뭇가지에 같이 있던 그 새도 비닐에 갇힌 새를 쫓아 날아갔다.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암수 한쌍인지 엄마와 아기새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족처럼 보이는 새들 같았다.
그러니 처음에 내가 나무 쪽으로 다가오자 비닐 옆 나뭇가지에 있던 새가 내쪽으로 몇 번을 빙 둘러 날았던 것 같다. 도와달라고 한 건지 사람이 다가오니 혹여 잡아갈까 봐 오지 말라고 위협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두 새는 아는 사이임은 분명한 것 같다.
우연히 아이들과
비닐속 새를 발견해서 다행이었고 관리소 소장님께서 흔쾌히 새를 구해주셔서 더욱 천만다행이었던 흐뭇한 사건이었다. 그 새들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고 오래오래 잘 살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나무속 비닐속에 갇힌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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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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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레크리에이션강사/초등수학강사/ 첫째는 난임을, 둘째는 조산으로 인한 장기입원을 겪은 파란만장 40대 후반의 엄마/ 중1, 초1 남매를 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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