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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상샬롬 Feb 26. 2021

남편의 서비스와 딸

이런저런 이야기 83

  남편과 결혼해서 첫째 딸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둘만의 시간을 5년 동안 가졌다. 계획해서 그랬던 건 아니었고 난임이라 아이가 생기지 않아 갖게 된 시간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들이 참 좋았던 것 같다. 오롯이 둘만의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또 아를 간절히 기다리게 되면서 아기에 대한 감사함과 소중함을 절실히 알게되었고 우리 부부의 사이가 더욱 돈독해지고 믿음이 더 커졌달까.


  아무튼 그렇게 남편과 워낙 사이가 좋았고 잘 통하는 편이라 거의 싸울 일이 없이 지내곤 했다. 대기업을 다니던 남편은 주말에도 일하고 평일에 이틀을 쉬곤 했는데 가끔씩 나에게 족욕 서비스를 해주었다. 화장실 변기커버에 내가 앉아 있으면 남편은 대야에 뜨끈한 물을 받아 내 발을 담그게 한 후  발 지압을 하며 시원하게 발 마사지를 해주었는데 어찌나 좋던지.


  손발이 차고 늘 추워하는 나를 위해 그런 건지, 늘 바빠고 피곤해서 나와의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해 미안함에 그랬는지 아무튼 가끔씩 남편이 해주는 족욕 서비스가 정말 좋았다. 하지만 첫째 딸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남편의 족욕 서비스는 없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6살이었는데 하루는 딸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녀오더니 숙제할 게 있다면서 나를 화장실로 부른다. 그리고는 남편이 하듯이 나보고 변기커버에 앉게 하고 대야에 미지근한 물을 받아서 내 발을 간지럽힌다.


  남편이 나에게 족욕해 주는 모습을 딸아이는 본 적이 없어 어찌 된 일인가 싶었는데 어린이집 숙제가 부모님의 발을 씻어 드리는 것이란다. 부모님께 감사해야 한다는 주제로 교육을 받고 숙제를 받아온 것이었다.


  6살이라는 나이에 숙제를 깜빡해서 안 할 수도 있고 냄새나는 아빠, 엄마의 발을 씻어주는 숙제가 싫어서 하지 않아도 되는데 너무나 기쁘고 신나하면서 내 발을 씻어주는 딸아이의 모습이 어찌나 이쁘고 사랑스럽던지. 남편의 족욕과는 또 다르게 뭉클하기도 하고 괜히 딸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마냥 감사하고 행복했던 것 같다.


  그랬던 딸이 벌써 11살인데 요즘은 딸과 자주 큰소리 내며 지지고 볶고 싸운다. 흐흐. 사춘기가 벌써 오는 건지 벌써 엄마인 나와 이러면 안 되는데. 조만간 딸의 발을 족욕해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좀 나눠봐야겠다.


5년 전 내 발을 족욕해주는 딸아이의 모습이 너무 이뻐서 저장해둔 사진

  https://brunch.co.kr/@sodotel/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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