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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상샬롬 May 02. 2020

친구에서 연인으로 그리고 부부가 되다.

15년 차 동갑내기 부부의 결혼생활 이야기 1

  2003년 20대 후반 즈음 두세 명의 여자 친구들과 늘 어울려 다니며 지내다가 친구의 남사친(남자 사람 친구)이 합류하고 또 합류하다 보니 7-8명 정도의 남녀 동갑내기 모임이 이루어졌다. 그 모임이 정말 너무너무 좋았고 재미있었다. 그래서 자주 퇴근 후 모여 저녁도 먹고, 맥주 한잔씩도 하고, 영화도 보러 가고, 생일도 서로 챙겨주고 여름에는 워터파크도 가고, 회비를 모아 휴가도 같이 맞추어 놀러도 가는 등 일주일에 4-5일은 함께 만나서 어울렸던 것 같다.


  동갑들이니 서로 통하는 것도 많고 편하고 또 한편으론 잔잔하게 싸우기도 하고 풀기도 하며 지냈는데 특히나 그중 한 남사친과 정말 많이 다투곤 했다. 별거 아닌 거에 자주 투닥투닥거린 것 같다. 하지만 서로 종교도 같고 관심사도 겹치다 보니 많이 친하게 지냈다.


  어느 날 그 모임에서 여름휴가로 2박 3일 여행을 갔는데 별거 아닌 일로 그 남사친과 또 투닥거리며 싸우게 되었다. 마음속으로 '와, 나중에 저런 남자랑은 절대 결혼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듣고 보니 그 남사친도 '저런 여자랑은 절대 결혼하지 말아야지.'라며 같은 생각을 했었단다. 흠, 무서운 녀석.


  암튼 남사친과 서로 전화통화도 많이 하게 되고 둘이 따로 자주 보기도 하고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을 무렵 그 당시 아이러브스쿨이라고 초등학교 동창모임이 한창 유행하던 시기였는데 동창 모임이 있다고 저녁모임에나오라는 소식을 들었다. 화장도 제법 하고 옷도 나름 신경 쓰며 모임을 가려고 하는데 남사친에게 전화가 왔다. 급한일이 있으니 동창 모임은 조금 늦게 가고 빨리 양재역으로 오라고 말이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남사친을 먼저 만나고 동창 모임은 늦게라도 가야겠다 생각하며 약속한 양재역으로 갔다. 남사친이 양재역 출구앞 의자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남사친이 대뜸 오늘 동창 모임을 가지 말라는 것이다. 왜 그러냐고 묻자 한참 뜸을 들이다가 "우리 사귀자!"라고 말했다.

 

  그 친구와 썸을 타고 있다는 건 느끼고 있었는데 사귀자는 말을 들으니 막상 놀랍기도 하고 떨리고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한편으론 좀 실망했다. 사귀자고 말하는 장소가 지하철 역 앞 의자라는 것 까지는 뭐 그럴 수 있다 쳐도 의자 주변에 웬 비둘기들이 그렇게 많은지 흰색 비둘기 똥들이 사방에 널려 있는 이곳에서 꼭 사귀자는 말을 했어야 했는지. 흑흑!


  남사친도 마음이 참 급했나 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내가 동창 모임에 나갔다가 동창 친구랑 썸이라도 탈까 봐 조급했던 모양이었다. 뭐, 남사친은 아니 이제 진짜 남자 친구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에서 연인이 되었다. 동갑내기 모임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서로 닭 보듯 싸우던 우리가 사귄다니 말이다. 그리고 1년 뒤 결혼한다고 하니 다들 기절하고 난리가 아니었다. 흐흐.


 그러다 연인으로 사귄 지 1년도 안되어 양가 부모님들의 재촉에 의해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이가 29살이었으니 몇 달 후 30살에 결혼을 꼭 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서른을 넘기지 말고 빨리 결혼을 하라는 어른들의 뜻이었다.


 암튼 양가 부모님들의 상견례가 끝나자마자 결혼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고 남자 친구에게는 그럴듯한 프러포즈도 받지 못한 채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항상 후회가 되었다. 아니 사귀자는 것도 비둘기 똥밭에서 받았는데 결혼 프러포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결혼을 하게 되다니. 억울했다.


 나는 사실 깜짝 이벤트 같은걸 좋아하는데 남자 친구 아니 남편은 그런 걸 정말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이벤트가 아닌 평소에 잘해야 한다는 주의였는데 뭐 가끔씩 꽃도 사 오고 맛있는 것도 자주 사 오고 나름 가정적인 남자이긴 하다.

 

 이렇게 우리는 친구에서 연인으로 그리고 부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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