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항상샬롬 May 23. 2020

침대에서 짱구 춤추다 쓰러진 남편

15년 차 동갑내기 부부의 결혼생활 이야기 5

  애증의 디카 사건을(전 편 내용 참고) 보내고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옥색 바다와 초록 초록한 나무들의 풍경들이 정말 너무 좋았다. 다만 옆으로 보이는 허름한 집들과 지저분한 거리들이 우리가 묵었던 숙소와 대조가 되면서 사람들의 빈부격차 모습이 한편으로 씁쓸했다.


  맛있는 조식을 간단히 먹고 가이드님을 따라 필리핀 세부 관광을 나섰다. 시장에도 가서 싸고 맛난 망고도 실컷 먹어보고, 이것저것 선물할 것도 사보고, 유적지 두 곳도 가보고, 리조트 내에서 수영도 하고, 맛있는 식사도 하러 가고, 스킨스쿠버도 하는 등 정말 재미있고 바쁘게 보냈다.


  여행은 언제 가든 정말 좋은 것 같다. 특히나 국외여행은 더더욱 좋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기가 생기기 전에 더 많이 여행 다닐걸 하고 후회가 되었다. 아기가 어릴수록 해외여행 다니기가 정말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하루 일정을 다 마치고 맛있는 저녁 뷔페를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은 진짜 대망의 거사를 치르는 날이다 라며 큰 마음을 먹었랬다. 결혼식 당일날은 피곤해서 그냥 안고만 자고, 신혼여행 와서 첫날은 디카 때문에 속상해서 울다가 술 먹어 뻗고, 오늘이 사실상 신혼 첫날밤인 셈이었다.  


  남편과 나는 각자 나름 꽃단장을 하고 내가 먼저 침대에 있었다. 남편이 가운을 입고 목욕탕에서 나온다. 그리곤 남편도 긴장이 되었는지 갑자기 침대 끝에 서서 날 보더니 짱구춤처럼 훌라훌라 하며 본인 나름의 막춤을 추기 시작했다. 긴장을 풀고 나를 웃겨주려고 하는 것이었다. 한참을 마주 보며 웃다가 남편이 씩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더니
"기다려. 내가 간다."

하면서 내 품으로 달려들려고 했다. 그런데 나도 왜 그랬는지 진짜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자동 반사적으로 다리를 뻗어 남편의 가슴을 발로 뻥 찼다. 남편의 가슴 정가운데 명치를 제대로 차 버린 것이다.


"헉."


하더니 가슴을 쥐어 잡고 쓰러진 남편. 나는 장난인 줄 알았는데 숨을 못 쉬겠다고 힘들어했다. 얼굴이 벌게져서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하는데 어찌해야 하나 당황했다.


  1층 로비로 전화를 할까, 가이드에게 전화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남편이 조금만 더 있다가 그래도 안 되겠으면 부르자고 했다. 남편은 30-40분을 그렇게 숨도 못 쉬고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다가 조금씩 얼굴색도 돌아고 좋아지기 시작했다.


  신혼여행 와서 천국 갈 뻔했다는 남편. 그날도 우리는 그냥 잠만 잤다. 남편의 가슴뼈가 너무 아파서 서로 안지도 못하고 그냥 떨어져서 열심히 잠만 잤다. 흐흐흐. 그리고 이 내용을 내가 라디오 사연에 보내서 아주 좋은 선물도 받았다.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 둘이 참 재미있고 신기한 경험들을 많이 했다. 동갑이라 그런 건지 둘 다 엉뚱해서 그런 건지 암튼 나름 우리 부부의 결혼생활은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이전 04화 신혼여행 첫날의 사건사고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