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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상샬롬 Aug 13. 2021

전에 살던 세입자가 찾아왔다

이런저런 이야기 117

  재작년 겨울, 지금 사는 집에 전세로 이사를 왔다. 집을 보러 왔을 때부터 공실이라 좋았다. 한창 이삿짐을 풀고 있는데 30대 여자분이 들어오시더니 이 집에 살던 세입자라고 했다. 그리고는 서류봉투에서 집안 곳곳 찍은 사진들을 꺼내 보여주면서 하는 말.


  자기네가 1년 반을 살다가 나갔는데 집주인이 집에 생활 흠집이라든지, 벽지가 떨어졌다던지, 거실 마룻바닥에 긁힌 자국까지도 다 물어내고 나가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자기네가 만든 하자가 아닌데도 원래 있었던 집안의 하자까지도 물어내라고 하니 너무 화가 나고 어이가 없었다고 한다.


  혹시 몰라 자기네들이 처음 이사 들어올 때 집에 하자가 있는 부분들을 다 사진 찍어두었다가 나중에 보여주었는데도 집주인은 절대 믿을 수 없다면서 무조건 다 보수해두고 나가라며 막무가내였단다.


  그러다가 이 집을 그냥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매매가를 너무 비싸게 부르고 전혀 깎아주지도 않고 집에 하자가 너무 많아서 안 사겠다고 말한 후 이런 집에서 살다가는 너무 스트레스도 받고 더 당할까 싶어 만기를 몇 개월 남기고 먼저 나갔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우리에게 조심 또 조심하라고 이 집에서 오래 살지 않는 게 좋을 거라는 말을 하고 갔다.


  기분 좋게 이사해야 하는 날인데 이사하는 내내 남편과 나는 마음이 무거웠고 기분이 안 좋았다. 우리를 위해서 해준 말이라 고마웠는데 이런 집에 살게 된다는 게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지금 사는 아파트가 새 아파트도 아니고 15년도 넘은 아파트라 여기저기 손볼 데도 많고 하자도 많은 집인데 집주인이 너무한다 싶었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이삿짐이 들어오는 동안 계속 집안 구석구석 하자 난 곳을 확인하고 찍고 또 찍었다. 그리고 이사를 다 마치고 근처 사시는 집주인 분을 불러 하자 난 곳들을 다 보여드리면서 설명을 해드렸다.


  집주인 분은 벽에 못질도 하지 마라, 마룻바닥에 물 닿게 하지 마라, 벽걸이 티브이도 하지 말라는 등의 말을 하고 갔고 남편과 나는 그저 한숨만 나왔다.


  올해 겨울이면 전세 만기인데 이 집에서 더 살게 될지 다른 집으로 이사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좋게 좋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2005년 우리가 살던 신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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